운장산에서 송익필을 만나다 (100대 명산)
산이름 : 운장산 ( 1,126m )
산위치 : 전북 진안군 정천면
산행일자 : 2008년 10월 26일
교통편 : 42인승 버스대절
노령산맥으로 알려진 금남정맥은 추풍령에서 남서방향으로 뻗어 나와 전라북도 남동부의 무주, 진안을 거쳐 전라남도 함평까지 뻗어 있는 우리나라 산맥 중에서 평균 산 높이가 전체적으로 저산성 산지를 이룬다.
진안군의 마이산과 운장산, 김제의 모악산, 정읍의 내장산, 장성의 백암산 등은 그래도 비교적 높은 봉우리에 속한다. 금남정맥의 서쪽 사면에는 전주시가 위치하고 있다.
진안고원은 북한의 개마고원만큼은 못하지만 남쪽에서 유일한 고원인데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무주, 진안, 장수의 3개군을 포함한 형성되어 있다. 평균 높이가 500m이다. 진안고원에는 마이산과 운일암, 반일암이 있고 삿갓배미 논두렁이 볼만하다.
산 겹겹 물 겹겹의 진안고원에 우뚝 솟은 운장산은 금남정맥(노령산맥) 중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서봉, 중봉, 동봉인 세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쪽으로 지리산, 덕유산, 무등산이 조망되며 북쪽으로 계룡산 까지 잡히는 말 그대로 일망무제를 연출하는 산이다.
특히 운장산은 여름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는 운일암 반일암 이라는 계곡을 안고 있어 천혜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보기 드문 남쪽의 명산이라 할 수있다. 산 높이가 1,000m가 넘지만 산행 들머리인 피암목재가 해발 580m이니 만큼 실제 산행 표고는 546m 이므로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운장산은 송익필과 관련이 있는 산이다.
여산 송씨 송익필 (자: 운장. 호: 구봉 )은 중종 때 태어나서 선조 때 죽은 성리학자로서 이율곡보다 2살 많다. 송익필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의 부친 송사련을 알아야 한다.
송사련은 자기를 나아준 어머니가 그 당시 좌의정이었던 안당의 아버지 첩의 딸이었으므로 서자였으며 안당과는 외사촌뻘이 되나 당대 권력자 심정 밑에서 출세를 노리고 있었다. 그 당시 안당과 심정은 정적 관계였다.
중종에게 조광조를 천거하였던 사람이 안당이었는데 송사련은 안당을 무고하여 안당 가문을 멸족케 하고 안당의 정적인 심정에게 빌붙어 신분을 뛰어 넘는 출세를 하게 된다. 그 때가 송익필 나이 7살이었으며 평생 부친의 업보에 시달려 온다.
그 당시 조선사회는 유교사상이었으므로 외갓집을 무고한 송사련 집안을 좋게 볼 리가 없어 아버지의 비난 때문에 벼슬길을 버리고 파주 심학산으로 들어가 후학을 가르치는데 그의 제자가 김장생과 김집이다.
그러던 중 선조 때 동인이 집권하여 안당 집안의 신원이 복원 되면서 송익필 가문에 먹구름이 끼게 되는데 안당이 무죄로 바꿔지면서 송사련은 비록 사후지만 삭탈관직 당하고 자식들은 안당 집안 노비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송철 이산해 등의 도움으로 송익필은 도피생활을 하며 53세에 운장산 성대에서 생활하다 무등산으로 옮겨 호남의 의병장 김덕령장군을 가르친다.
그의 나이 56세에 자수하여 유배생활을 하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9세에 유배지에서 풀려나 낙향하였으며 사후 150년이 지나서 비로소 복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정권이 바뀌면 희생자가 있기 마련이다.
운장산 칠성대 아래에 조선 선조 때 이율곡과 함께 8대 문장가로 꼽은 운장 송익필이 은거 하였던 오성대가 있으며 등산로에 펼쳐져 있는 산죽 밭이 등산객의 눈과 마음을 아주 편하게 해주지만 송익필의 한은 거둘 수가 없다.
송익필의 자가 운장인데 본래의 산 이름인 주즐산을 운장산이라 고쳐 부른 것을 보면 그 당시에는 송익필이 꽤나 세간에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산은 사람과 유명사찰도 만들지만 때론 사람과 사찰이 산을 빛내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경북 봉화에 있는 이퇴계와 청량사의 청량산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산에서 깨달은 사람이나 산에 터를 잡고 있는 사찰이 가끔은 우리의 삶에 향기를 던져주지만 이를 간과하거나 애써 외면하면서 산행만 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은 것을 보면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제 우리들이 앞장 서서 역사와 문화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십여 년간 전국을 돌면서 도피생활을 하던 송익필은 나이 53세에 운장산 오성대에 올라 2년간 은거를 하면서 많은 학문과 시를 남겼는데 그 중 오성대에서 지은 시 한 수 소개한다.
“온 종일 혼자 산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졸고 있네
저녁 산 어스름이 비가 되어 문 앞에 내리네
귓가에 세상소식 들리지 않으니 씻어 무엇하리!
푸른 사슴이 놀러 나와 푸른 옹달샘을 마시네.”
KY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