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름다운 산하/한국 100대 명산 완등기록

청량산의 신라 두 거승 (100대 명산 )

케이와이지 2020. 9. 24. 21:02

산이름 : 청량산 ( 869m )

산위치 : 경북 봉화군 청량로

산행일자 : 2007년 12월 8일

교통편 :  42인스 버스대절

 

청량산 자소봉

  
청량산은 경상북도 봉화군에 있는 870m의 명산이다.


경북의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산세가 수려하며  특히 어풍대는 최고의 절승으로 꼽힌다. 진성이씨 집안인 이퇴계는 13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숙부와 함께 청량산에 들어가 독서를 하면서 인연을 맺으면서 평생을 이 산에 올라 성리학을 연구했다.
 
원래 청량산은 진성이씨 소유인데 이퇴계  5대조인 이자수가 고려시대에 송안군으로 책봉되면서 조정으로부터 하사받은 봉산이기에 청량정사를 오산당으로 부르기도 한다.


청량정사 옆 산꾼의 집 주인 이대실씨도 진성이씨 집안이며 이퇴계 집안의 문중 산으로 등산객에게 차도 공짜로 준다.

 

청량정사는 이퇴계가 도산서원에서 수시로 이곳에 와 수도를 했다하여 진성이씨 후손들이 지은 서당이다.
 
 

왼쪽 청량정사 / 오른쪽 산꾼의 집

 
 
청량산에 두 개의 대웅전이 있는데 유리보전과 응진전이다. 유리보전은 원효대사가 663년 창건한 것이고 응진전은 20년 후 683년에 의상대사가 지은 것인데 신라의 두 거승이 앞다투어 20분 거리를 두고 지은 것은 이 만큼 청량산의 뛰어난 산세를 반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금탑봉 아래 응진전

 
의상이 응진전을 짓고 외청량사라 부르며 청량사와 같은 반열로 놓는 것은 그 당시 의상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청량사 / 맨 왼쪽이 유리보전

 
원효는 의상보다 8살 위지만 출가는 4년이 더 늦다.  원효와 의상은 둘이서 당나라 현장법사에 유학길을 떠났으나 요동에서 고구려 첩자로  몰려 다시 돌아왔지만 10년 뒤에 둘이서 또 유학길을 떠났는데 백제 땅 당항성(화성시)의 동굴에서 원효가 해골 썩은 물을 마시고 해탈하여 귀국하여 대중불교의 효시가 되었고 의상은 유학을 마치고 화엄종의 시조가 되었다.
  
 

자소봉

  
청량사의 유리보전의 현판 글씨는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 때 안동으로 피난 와서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응진전에서 노국공주가 3개월 동안 기도를 올렸는데 난의  진압과 아이를 낳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웅진전 앞에서 축융봉을 바라보면 남녀가 안고 있는 형상이다.
 
노국공주는 원나라 왕실의 공주로서 정략결혼의 희생자가 되었지만 고구려인이 되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으며 아이를 못나 애태우다 청량산에서 기도하고 개성으로 돌아가 몇 년 후에 임신하였으나 난산 끝에 숨졌다.


공민왕은 죽은 노국공주를 잊지 못하고 귀족과 시녀들의 음란행위를 보는 관음증과 동성애에 빠져 살다가 최만생이라는 환관에게 시해 당하였다.
 
안동지방에 놋다리밟기라는 놀이가 있는데 정월 대보름에 여성들이 하는 민속놀이로서 미리 선발된 공주를 등을 밟고 가면서 노래를 한다.

 

그 유래는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청량산에 들어올 때 개천을 건너야 했는데 다리가 없어 공민왕은 말을 타고 건넜으며 노국공주는 인근 동리의 부녀자들이 나와 횡대로 늘어서서 엎드리게 한 후 그 등을 밟고 건넜다하여 놋다리밟기가 유래 되었는데 조선 초가까지 내려오다 지금은 없어졌다.
 
  

축융봉

 
웅진전에서 멀리보이는 축융봉은 남녀가 꼭 껴안은 모습이다.  위 사진으로는 경관 좋은 산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응진전 앞에서 보면 남녀가 꼭 껴안은 모습으로 보인다. 노국공주는 저 축융봉을 보면서 아이를 낳을 수 있기를 그토록 기원했을 것이다.
 
그 밖에 청량산에는 역사에 기록된 인물들의 흔적이 있는데 신라 수도 경주와 가까이 있다는 입지적 여건이 좋았기 때문이다. 치원대와 김생굴이 그러하다. 최치원은 신라의 문장가로 그가 머무른 곳을 치원대라 부르고 신라의 명필가 김생이 글을 연습하는 굴도 등장하며 그곳을 김생굴이라 한다.
 
김생은 굴에서 9년간 글 쓰는 연습을 하고 내려오다 천을 짜는 청량 봉녀와 만나 시합을 하다 져 다시 1년을 채워 꼬박 10년간 글을 연습하고 내려와 신라 명필이 되었다. 조선 판 한석봉과 어머니라 할 수 있다.
 
                               KY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