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름다운 산하/한국 100대 명산 완등기록

황악산에서 사명당을 만나다 (100대 명산)

케이와이지 2020. 10. 30. 17:00

산이름 : 황악산 ( 1,111m )

산위치 : 경북 김천시 대항면

산행일자 : 2007930

교통편 :  42인승 버스 절

 

황악산

 

황악산은 경북 김천에서 시내버스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김천시 대항면에 위치한 해발 1,111m전형적인 육산이다.

 

황악산은 몰라도 직지사는 들어본 적이 있다고 할 만큼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찰을 끼고 있어 황악산이 100대 명산으로 분류되었다.

 

 

가스가 산을 덮는다

 

산세는 보편적으로 암벽이나 절벽이 없이 평평하고 완만한 편이라 육산으로 분류되며 산 전체가 수목으로 덮혀 봄철에는 진달래와 벚꽃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힘들지 않게 오른 정상에서 조망되는 영동의 민주지산, 구미의 금오산, 합천의 가야산의  아련함을 산꾼들에 안겨준다는데 우리들은 궂은 날씨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

 

 

흙길의 연속

 

직지사

현대식 건물로 재단장한 직지사는 원래 신라 눌지왕 때 묵호자가 구미에 있는 도리사를 지으면서 같이 창건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창건 이후 몇 번의 중수 끝에 고려 태조 왕건의 도음을 받아 능여에 의해서 중창이 되어 번창하다 조선조 임진왜란 때 철저히 파괴되었다.

 

직지사라는 절 이름은 능여가 절을 중창할 때 줄자를 쓰지 않고 직접 자기 손가락으로 측량했다 해서 直指寺라 이름을 고쳤다 전해진다.

 

후백제의 견훤왕이 신라 경애왕을 살해하자 신라를 구하러 갔던 왕건이 오히려 대구 팔공산 싸움에서 대패하여 겨우 목숨만 부지하며 직지사의 능여대사를 찾아가 묘책을 묻자 능여는  하룻밤 사이에 삼은 짚신 2천 켤레를 왕건에게 전하며 말띠 해가 되면 큰일이 이루어지리라 하였다.

 

왕건이 2천 켤레의 짚신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기록에는 없지만 곤경에서 벗어나서 예언대로  말띠 해 934년에 후백제를 멸하고 고려를 세웠다이러한 연유로 능여는 왕건의 도움을 받아 직지사를 크게 중창할 수 있었다.

 

 

사명대사의 영정을 모신 사명각/ 사진 캡쳐

 

사명당공원의 평화의 탑 / 사진 캡쳐

 

그러나 직지사는 또다시 큰 화를 입는데 임진왜란 때 사찰이 거의 불타버리고 폐허화 되었다그 당시 승병장으로 활약하던 유정 사명대사가 처음 직지사에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다고 해서 왜병들이 직지사를 철저히 피괴했던 것이다전쟁이 끝나고 광해군 때부터 다시 복구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되어 현재는 통도사 버금가는 대사찰이 되었다.

 

 

귀경길 버스 안의 즐거움

 

                                         KY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