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와이지 2020. 11. 4. 19:40

산이름 : 민주지산 ( 1,242m )

산위치 : 충북 영동, 전북 무주, 경북 김천

산행일자 : 20121125

교통편 : 42인승 버스 대절

 

민주지산 정상

 

민주지산은 충북 영동군, 전북 무주군, 경북 김천시의 3개 도에 걸쳐있는 해발 1,242m 높이의 산이며 예로부터 신라와 백제의 접경을 이룬 곳이다원래 산 이름은 백운산인데 일제 강점기에 처음 민주지산으로 공식화되어 현재까지 민주지산으로 불리고 있으며 각호산, 석기봉, 삼도봉의 세 개의 봉우리를 품고 있는 넓고 큰 산이다.

 

해발 800m인 도마령에서 산행이 시작한다

도마령

 

 

해발 1,020m 각호산을 올라간다

각호산

 

 

각호산에서 조망되는 민주지산의 거대한 파노라마 오늘은 민주지산 정상에서 하산한다

 

 

 

무인대피소이며 제 공수특전대 동사사고 첫 사망자가 발생한 곳

무인대피소

 

 

 

일반인들에게는 민주지산 보다는 삼도봉이 더 알려져 있는데 세 개의 도가 걸쳐있다 해서 삼도봉을 민족화합을 상징하는 봉우리라 말한다.

 

산행 들머리도 충청, 전라, 경상도 지역으로 갈라져 있어 삼도봉 정상에는 3개 도의 사투리가  혼재되어 신기함을 느끼지만 금새 같은 민족의 산꾼으로 융화되어 서슴없이 막걸리 잔을 주고받게 된다.

 

오늘의 산행코스

도마령 > 각호산 > 민주지산 > 잣나무숲길 > 물한계곡

안내판

 

민주지산은 1,000m 이상의 각호산, 석기봉, 삼도봉을 거느리고 울창한 산림과 원시림 계곡인  물한계곡을 끼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한국 100대 명산에 선정되었으며 뜻하지 않게 특전사 대원들의 동사 사고의 비극도 안고 있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가보고 싶은 산이다.

 

 

물한계곡

 

63산악회는 시간 관계상 도마령에서 출발하여 각호산, 민주지산 정상을 거쳐 물한계곡으로 코스를 택했는데 석기봉과 삼도봉을 밟지 못한 매우 아쉬운 산행으로 기록되었다.

 

 

물한계곡 주차장 / 해발 490m

 

제 5공수 특전사의 동계 사고 전말을 시간대별로 구성해 본다.

 

! 민주지산

1998327()

인천시 계양구에 위치한 제 5공수 특전여단 (일명 흑룡부대) 23 특전대대 대대장 이춘일 중령은 여단장 천연우 준장에게 천리행군을 출발한다는 보고를 하고 부대를 출발하였다. 이번 천리행군은 칠갑산에서 시작하여 계룡산, 대둔산, 덕유산, 민주지산속리산, 월악산을 거쳐 대모산에서 마칠 예정이었다.

 

천리행군이란 완전군장을 갖추고 천 리 즉 400km를  8일 동안 산악지대 행군훈련을 말하며 1974년 특전사에서 처음 실시한  것이 그 유래로 다른 정예부대들에도 전파되었다.  1년에 1회 실시하고 있다.

 

<1일 째>

1998328()

23 특전대대는 대대장을 필두로 중대장 김광석 대위 등 대원들은 출발지 청양 칠갑산에 집결하여 칠갑산을 넘어 공주 계룡산을 행군하였다.

 

<2일 째>

1998329()

계룡산에서 논산 대둔산까지 행군하였다.

 

<3일 째>

1998330()

대둔산에서 전북 용담면까지 행군하였다.

 

<4일 째>

1998331()

용담면에서 전북 무주군 덕유산까지 행군하였다.

 

 

<5일 째>

199841()

덕유산을 넘어 무주군 설천면에 도착했으나 예보 없었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대원들은 무주군 하두마을 민가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면서 재정비를 하였다일기예보 상으로 비가 조금 내린다고 하여 대대장은 행군을 강행하기로 결정한다.

 

(오후 1시)

대대장은 계획대로 민주지산을 향해 행군을 출발시켰다.  그러나 출발한 지 1시간쯤 뒤부터 비가 많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오후 3)

 민주지산 6부 능선을 통과할 즈음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서 비가 갑자기 눈으로 바뀌었다.

 

(오후 4)

8부 능선을 지날 무렵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눈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눈보라가 몰아쳤다

 

(오후 450)

부대 행군속도가 느려지고 대원들이 저체온증으로 탈진하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기상이 정상화될 때까지 행군을 잠시  중단하고 일단 휴식을 취해도 될지  대대본부에 문의했으나 대대장은 행군을 예정대로 강행하라.” 하고 지시하였다.

 

(오후 5)

선두 인원이 민주지산 정상에 도착하였으나 날씨가 워낙 춥고 기상이 나빠 통신장애가  생겼다. 이 무렵 체감 온도는 영하 30도에 달했으며 탈진자가 다수 나왔다.

 

(오후 620)

후미 대원들은 아직 민주지산 정상 300m 전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첫 사망자인 이광암 하사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하였다.후미 대원들은 이광암 하사를 그 자리에 두고 얼마 뒤에 정상에 도달하였다.

 

민주지산 정상 300m 전에서 이광암 하사가 사망한 자리에 5공수특전사는 무인대피소를 설치하여 이광암하사의 넋을 기리고 있으며 오가는 등산객들에게 안전산행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오후 630)

후미 부대는 산을 내려가면서 첫 임시구호소를 설치하여 저체온증으로 의식을  잃은 인원을 구호하였고 상태가 좋은 인  원은 그대로 하산을 시켰다.

 

(오후 710)

 선두 부대에도 탈진자가 다수 나와 2차 임시구호소를 설치하였다.

 

(오후 750)

 3차 임시구호소를 설치하였다.

 

(오후 810)

선두 부대원 일부가 겨우겨우 하산하여 민가에 도착하였으며 이들은 민가의 전화를  빌려 부대에 구조를 요청하고 물한분교에 임시 대피소를 설치하였다. 영동소방서 119구조대는 부대로부터 헬리콥터를 띄워달라는 구조 요청을 받았으나  기상이 나빠 띄울 수가 없었다.

 

(오후 910)

비로소 영동소방서 119구조대가 도착하여 환자들을 후송하였으며 후송 도중  오후 930분에 전해경 하사가 사망하였으며 5분 후인 935분에 오수남 하사가 후송 구급차에서 뒤이어 사망하였다.

 

 (오후 945)

아직 하산하지 못한 6부 능선의 후미부대를 지휘하던 중대장 김광석 대위는 탈진  상태로 낙오된 한오환 하사를 구하려다 자신이 참변을 당했다.

 

(오후 1030)

낙오된 한오환 하사가 사망하였으며 같은 시간에 하산지점을 앞에 두고 이수봉 중사가 최후의 사망자가 되어 장교 1, 대원 5, 6명이 사망하였다.

 

위 내용은 필자가 영화 ! 민주지산을 보고 필자 나름대로 민주지산 제 5공수 특전대원 동사 사고를 날자와 시간대로 구성을 한 것입니다.

 

국방부는 이번 동사사건을 5공수 특전여단 동사 사건으로 공식으로 칭하며 책임을 물어 이춘일 대대장을 보직 해임하고 여단장과 정보참모는 징계조치 하였고 사망한 6명에게 1계급 특진을 했다.

 

국방부는 동사의 원인이 비로 옷이 젖어 저체온증이 발생했다고 판단하여 전군에 고어텍스를 보급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사사고 1년 후 1999년에 국방부에서 ! 민주지산이라는 제목으로 국방영화를 촬영하여 군대는 물론 일반에게도 공개 하였다.  

 

영화제작을 실감나게 하기 위해 당시 행군 훈련에 참가했던 대원 250명을 출연 시켰는데 대원들이 촬영 도중 숨진 전우들을 떠올리며 울음을 터뜨리거나 당시 상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재촬영을 요구하는 바람에 버린 필름만 엄청났다 한다.

                     

                            KY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