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한국의 아름다운 산하

인왕산숲길과 백사실계곡

케이와이지 2022. 6. 14. 11:01

제 464회 산행

산행일자 : 2022년 6월 11일 (토)

산행인원 : 13명 

   
인왕산숲길은 서울의 걷기 좋은 길로 선정된 곳 중 하나로 인왕산 자락길과 연계되어 있다. 인왕산은 서촌의 대표적인 산으로 경복궁의 우백호이며 좌청룡은 숭인동 낙산이다
 
조선시대에 옥인동, 통의동, 효자동, 사직동, 청운동 일대를 일컬어  壯洞이라 불렀는데 북촌, 남촌이 등장하자 어느때 부터인지 슬며시 서촌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서촌에는 역관이나 의관 등 전문직인 중인들과 사대부들이 혼합하여 거주하였는데 추사김정희, 화가 겸재 정선,  화가 이중섭, 시인 윤동주가 대표적인 서촌 주민들이다.
 

성곽길에서 본 인왕산

인왕산은 본래 경복궁의 서쪽에 있다하여 서산이라 하였는데 언제부터인지 무악동에 있는 인왕사라는 절의 이름을 따서 인왕산이라 불렀다 한다.
 

성곽길에서

조선시대에 청계천을 중심으로 가회동,재동, 삼청동 등 북쪽을 북촌이라 부르고 남산을 중심으로 한 남쪽을 남촌이라 불렀다.
 
북촌에는 왕족과 관료들이 주로 거주하였고 남촌에는 양반의 자손들이기는 하나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남산골 센님이라 놀림까지 받았던 몰락한 선비들이 주로 살았다.

 

산행 안내도
사직단

태조 이성계는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종묘를 지어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서쪽에는 토지의 神인 사(社) 와 곡식의 神인 직(稷) 자를 써서 사직단을 설치하였다.
 
이를 종묘사직이라 부르며 제를 올렸는데 왕실과 백성을 동일체로 보는 통치의 조건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황학정 국궁장

황학정 黃鶴亭은 고종시대 때 세워진 누각 및 정자로 조선왕조 시절부터 이어져온 유일하게 활을 쏘는 국궁터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도 진행형이다.
 

인왕산숲길 입구

 

서촌에서 조망되는 남촌의 남산타워

 

택견수련터

조선의 마지막 택견꾼 송덕기가 택견 수련을 했던 곳으로 송덕기는 12세부터 그 당시 인왕산호랑이라 불리는 임호에게 택견을 배웠다한다.
 

택견꾼 송덕기 / 사진캡쳐

 

메마른 수성동계곡

수성동계곡(水聲洞溪谷)은 계곡 물소리가 크다 하여 수성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는데 1년 중 수성동계곡에 물이 흐르는 광경을 볼 수 있는 횟수는 몇회나 될까!  옥인 아파트에 묻혀있다 2012년에야 발굴되어 일반에 공개되었다
 
소를 즐겨 그려서  황소화가로 불리었던 이중섭은 수성동계곡에서 매일 목욕을 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전해진다.
 

겸재 정선의 수성동계곡 기린교

겸재 정선이 그린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에 수성동계곡 그림이 실려있는데 기린교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장동팔경첩은 장동의 여덟 개의 경관을 담아놓은 산수화인데  장동은 서촌의 옛 지명이다
 

동하의 수성동계곡 기린교

 

가온다리

 

인왕산 호랑이 터

인왕산 호랑이
경복궁의 우백호라는 인왕산은 전체적으로 볼 때 흡사 호랑이가 웅크린 형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왕산 하면 호랑이를 떠오르는데 실제 조선시대에 인왕산 일대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였다 한다.
 
인왕산고개를 현재의 무악재라 하는데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재를 넘으려면 여러사람이 모여야 비로소 넘어 다녔다 하여 “모아재”라 불려오다 오늘날의 무악재가 되었다는 설이 이를 뒷바침 하고 있다.
 

윤동주가 길을 안내하다

 

윤동주문학관

 

윤동주 문학관을 지키는 인왕산 호랑이

 

백사실계곡으로!

윤동주문학관을 뒤로하고 창의문을 지나 북악산을 끼고 우회전하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부암동 건축물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백사실계곡을 향하여 부암동 길을 걷다보면

 

백사실계곡 안내판을 만난다

 

백사실계곡에서 비로소 물을 만난다

 

백사실계곡의 고목

백사실계곡 (白沙室溪谷)은 북악산 북쪽 부암동에 있는데 白沙室이라는 이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백사 이항복을 떠올리며 백석동천의 소유주는 백사 이항복이었다 전해 내려오면서 계곡이름이 논란거리가 되어왔다
 
이에 논란거리에 종지부를 찍고자 문화재청은 2012년 백사실계곡과 이항복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밝히고 그당시 이항복은 종로 사직공원 옆 필운동 필운대에서 살았다는 사료를 증거로 댔다.
 
이항복도 서촌 사람이라는 것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백석동천 /사진 캡쳐

백석동천 白石洞天의 백석은 하얀 돌을 의미하며 동천은 무릉도원이나 별천지 처럼 신선이 사는 곳을 말한다.
 
 

백석동천이 있던 터 / 사진캡쳐

 
문화재청은  이 곳에 하얀 화강암 돌이 많아 백석이라 부르고 室은 골짜기를 의미하므로 백석실이라 불러오다 와전되어 백사실이라 불렸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이 별서(백석동천)의 역대 소유주의  한 사람을 추사 김정희라고 밝혔다.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하며

 

모든것이 그러하듯 한번 정해지면 좀처럼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백사실계곡으로 불려지고 앞으로도 그렇게 불릴 것이다.
 
물론 선린63도 백사실계곡에 갔었노라 기록하면서 먼 훗날 이 날을 회상할 것이다. 종로구청도 이름을 바꿀 의사가 없는 듯 안내판도 백사실계곡으로 그대로 표시하고 있다
 
                         케이와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