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반도 (5)
<외나로도를 향하여!>
천등산에서 하산하여 이름 모를 마을앞에서 다시 고흥읍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고급승용차 BMW 한 대가 쏜살같이 지나가는데 남도 끝자락
이름모를 마을앞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완행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그는
씁쓸한 맛을 느꼈다. 다음 목적지 외나로도에 가려면 다시 고흥읍 버스터미널에
가서 환승을 해야 하므로 무작정 버스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고흥읍 버스터미널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서 약국에서 구입한 연고로 산행할 때
할킨 얼굴과 팔뚝에 생긴 생채기에 문지르며 기다리자 나로도 행 직통버스가 들어온다.
승객이 그를 포함 대 여섯 명이므로 자연스럽게 운전수 옆에 앉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여행할 때 운전수 바로 옆에 앉는 것은 그의 오랜 여행습관이다.
봉황산을 뒤로하고 나로도 행 국도로 들어선 직통버스는 팔영산 뒷모습을 창틀에
매달고 달리다 멀리 푸른바다가 보이자 산자락이 멀어지기 시작한다.
팔영산의 마지막 산자락이 자취를 감추자 이번 여행의 두번 째 숙박지인 여수반도가
누운 듯 한 눈에 들어 온다.
외나로도에서 여수항으로 가는 여객선이 오후 4시에 출발한다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그는 마음의 여유로움을 느끼며 나로도와 여수를 그리고 있었다.
거대한 암벽투성이 마복산을 크게 휘감고 한우를 많이 키운다는 우산마을을 지날 때
까지 한 마디 없던 젊은 운전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선글라스를 멋지게 걸치고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는 사십 대 초반의 운전사가
나를 보고 씩 웃고 있다.
“ 뵙기에 등산 하시는 분 같은데 어디까지 가신다요? “
" 아 예 ~ 외나로도 구경도 하고 거기서 여수행 순풍호를 탈겁니다,"
하고 응대를 하자 운전수 양반의 대답도 바로 나온다.
" 아 그래요잉 "
“ 순풍호가 격일제로 운항 하는데 오늘 운항할지 몰겄네요잉."
"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매일 운항을 했는디 연도교가 생겨 손님이 없어서
격일제 운항으로 바꽈부렀는디 오늘 운항한가 몰것오"
운전수 양반의 이 한 마디에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혹시 오늘 결항하는 날 아닐까!
운전수 양반이 말한 연도교란 내나로도와 외나로도를 연결한 다리를
일컫는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외나로도 주민들이 예부터 순풍호 뱃길을 이용 했는데 연도교가 생겨 굳이
배를 이용하지 않고 육로로 가면 오히려 더 편하고 교통비도 싸게 먹힌다며
순풍호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 갈매기가 된 누나 ! >
연도교를 지나 구불구불 섬 도로를 몇차레 돌며 마지막 고갯마루를 넘어
서자 꿈에서나 볼 수 있는 환상의 섬이 눈 앞에 펼쳐진다.
굽이굽이 해안선을 따라 하얗게 부서지는 하얀 포말선이며 도화지에 푸른
물감을 칠해 놓고 그 위에 먹물 방울을 뿌려놓은 것처럼 작은 섬들이 둥실 둥실 떠있다.
운전사 양반에 손을 흔들고 선착장으로 내리 달렸지만 선착장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있다. 오늘은 결항이라는 의미이다. 허무한 마음에 풀썩 주저 앉는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여객선 뱃머리에서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휘파람 불며
여수항으로 이어지는 다도해 뱃길 낭만에 도취되었던 그가 아닌가 !
그는 공연 끝난 무대 한 가운데서 허탈하게 서 있다.
갈매기 한 마리가 하늘을 맴돈다. 끼륵 끼륵 갈매기 한 마리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
갈매기는 죠나단이 되어 수직으로 비상하더니 마지막 훼를 치며 바다로 곤두박질 친다.
그래,
저 슬픈 죠나단이 그가 찾던 누나일지 모른다.
죠나단을 쫒아 방파제를 냅다 달려 작은 등대가 서 있는 구릉에 섰건만 죠나단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운 선자누나 !
당신은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소 ?
- 완 결 -
<에필로그>
나는 결국 막연한 누나 소식도 알아내지 못하고 이번 여행의 백미 순풍호도
타지 못하고 외로운 외나로도에서 외롭게 혼자 하룻밤을 묵었다
누나는 동생이 이토록 멀리서 왔는데 고흥에서 하룻밤만 재우고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날 밤 해풍이 상당히 심했고 아침에는 지나가는 비까지 뿌렸다.
서울로 올라오면서 줄곧 생각했던 것은 인연과 추억이란 단어 뿐이었다.
철 없던 시절 2년간의 인연이 이토록 긴 세월 동안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되고 있다는
것은 인간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새삼스러히 느끼게 하는 소중한
이번 고흥 여행을 만들어 준 누나에게 감사한다는 말도 잊지 않고 고흥을 떠났다.
1992년 5월 22일 씀
KY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