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산 백세길의 초겨울 정취
제 496회 산행
날짜: 2023. 12. 9 토
위치: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인원: 14명
오늘의 코스
공릉산백세문- 삼육대삼거리 - 태릉
공릉산백세문
공릉동에 위치한 산으로 가는 이 문을 통과하면 100세까지 살 수 있는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공릉2동은 원래 양주군 공덕리라는 마을이었는데 1963년 서울로 편입될 때 공덕동으로 개칭되었다.
그러나 마포구의 공덕동과 이름이 겹쳐 동 이름을 태릉동으로 일시 불렀지만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친다.
이에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태릉과 강릉이 있어 능골이라 불렀던 점을 감안하여 공덕동의 “공”자와 능골의 "능"자를 합성하여 현재의 공릉동이 되었다한다.
아늑한 정자에서 맛깔과 웃음의 향연
다시 산행은 시작되고
삼육대삼거리에서 삼육대로 하산하다
멀리 불암산 정상을 배경으로
하산길에 제명호를 만나다
오늘의 뒤풀이 장소
오늘의 작품
공릉동의 세계유산 태릉
문정왕후 이야기
문정왕후는 조선왕조 실록에서 가장 혹독한 평가를 받고있는 왕비이다.
연산군의 폭정이 지속되자 박원종 등 반정 세력들은 소위 중종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의 배다른 동생인 진성대군을 중종으로 즉위한다.
중종의 부인이던 신씨는 단경왕후로 신분이 바뀌었지만 단경왕후의 아버지인 신수근이 중종반정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단경왕후는 폐위되어 인왕산 아래 친정으로 쫓겨난다.
중종은 두 번째 왕비를 맞이하는데 그가 윤임의 여동생 장경왕후이다. 장경왕후는 윤임의 기대에 부응하여 아들(훗날 12대 인종)을 생산 했지만 산후병으로 사망하는데 중종은 두 번째 왕비마저 사별한다.
윤임은 외조카인 어린 세자 인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왕비가 필요하다 생각하고
같은 가문의 17세 처녀 윤씨(훗날 문정왕후)를 중종의 세 번째 왕비로 삼는데 앞장선다.
중종의 세 번째 왕비가 된 문정왕후는 경빈박씨 등 후궁들의 왕자들을 견제하며
세자 인종을 보호하면서 불안한 자신의 안위를 지켜 가면서 4명의 딸만 내리 낳자 그녀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문정왕후는 왕비가 된지 20년이 되는 30대
후반에서야 그토록 기다리렸던 아들(훗날 13대 명종)을 생산한다.
이때부터 문정왕후는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동생 윤원형과 그의 첩 정난정과 함께 세자 인종을 핍박하고 저주하며 갖은 악행을 일삼고 윤임 세력에 맞서는데 역사가들은 이를 대윤과 소윤의 대립이라 말한다.
중종이 죽자 인종이 왕위를 이어받아 일단 대윤 윤임의 승리로 끝난 듯 보였지만 문정왕후의 저주가 통했는지 인종은
즉위 8개월 만에 사망하고 중종의 유일한 적자로 남은 문정왕후의 아들 경원대군이 12살의 나이로 13대 명종으로 등극한다.
명종이 성년 20살이 안되었기 때문에 문정왕후는 8년간의 수렴청정을 하였으며 수렴청정이 끝난 후에도 아들 명종을 휘두르며 죽을 때까지 권력을 행사했다.
야사에 의하면 문정왕후는 명종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 네가 왕이 된 것은 모두 나의 힘이다” 하면서 때리기까지 했다한다.
백척간두의 위태로운 정쟁 속에서 헤쳐나온 문정왕후는 윤임과 그 일파를 일소하면서 수많은 정적들을 제거하는데 이를 을사사화
라 일컫는다.
왕권이 안정되자 평소 불자였던 문정왕후는 불교 부흥책을 세워 승려 보우를 봉은사 주지로 임명하며 불교 부흥에 매진하였다. 이때의 불교 부흥으로 임진왜란 때 활약한 승려 유정 사명대사와 휴정 서산대사가 발탁 되었던 것은 고무적으로 볼 수 있다.
문정왕후는 스승으로 모셨던 승려 보우의 건의에 따라 경기 고양시 서삼릉에 모셨던
남편인 중종의 묘 정릉을 강남구 선릉으로 이장해 오고 자신도 그 곁에 묻히기를 소원 하였다.
선릉에는 중종의 아버지인 성종이 묻혀있어 자신도 선릉에서 중종과 함께 나란히 묻히기를 바랬던 것같다.
선릉과 중종의 묘인 정릉이 함께 있어
오늘날 선릉을 선정릉으로 부르는 연유이다.
명종이 즉위하고 20년이 지나 문정왕후는 양주 회암사에서 64세의 나이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중국판 측전무후로 평가되는 세기의 문정왕후는 47년의 정쟁에서 물러나 눈을 감았다.
명종은 어머니의 유언대로 문정왕후를 선릉에
있는 중종 묘로 합사하려 하였으나 중종의 묘
에서 물이 나온다해서 취소하고 현재의 공릉동
에 조성하고 능호를 태릉으로 하였다
명종도 문정왕후 사후 2년만에 34세의 나이 로 세상을 뜨자 어머니 옆에 나란히 묻었은데
능호를 강릉으로 하였다
오늘날 태릉과 강릉을 합쳐 태강릉으로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