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식 에세이

약사봉의 비밀을 찾아

케이와이지 2018. 3. 2. 17:11

프롤로그 1 ♠
박정희는 1917년생으로 만주군관학교를 나와 일본장교가 되었으며 한 살 아래인 장준하는 일본에서

신학교를 다니다 학도병으로 끌려가 중국 서주에서 탈출하여 중경 임시정부를 찾아가 독립운동을 했다.

 

1945년 8.15해방을  맞이하여 김구선행 비서로 귀국한 후 사상계를 발간하였으며 1961년에 박정희

5.16 군사 구데타를 일으키자 사상계 언론을 통해 박정희를 비판하였다.

 

박정희가 1972년 유신선포를 하자 이에 항거하여 박정희 최대의 정적이 되어 긴급조치 1호로 체포

되어 15년 구형을 언도 받았으나 1974년 병세 악화로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그 이듬해 1975년 8월

17일  57세의 나이로 포천 약사계곡에서 의문사를  당한다.

 

 프롤로그 2  ♠

장준하는 병 보석으로 풀려나자 건강을 위해 등산을 다녔는데 그의 수행자는 주로 백기완과 이철우였다. 의문사 당한

날은 1975년 8월 17일 (일요일) 무더운 날씨라 장준하는 백기완 등에게 이번 등산은 날이 더우므로 쉬겠다고 통보를 하고 면목동 자택에서 쉴 예정 이었으나 그 전날인 토요일에 평소 알고 지내던 호림산악회 회장 김용덕 으로부터 천안에서 온 후배가 꼭 뵙고자 한다며 약사동계곡으로 계곡산행이나 하자고 권유를 받았다.

 

이미 쉬기로 작정한 장준하는 한사코 거절하였으나 김용덕으로 부터 계속 권유를 뱓았다. 장준하의 부인 김희숙씨의 증언에 따르면
토요일 낮 1차 권유에 거절
토요일 밤 2차 권유에 거절
일요일 새벽 3차 권유에 거절
일요일 아침 4차 권유에 할 수 없이 반승낙하고 별다른 준비 없이 등산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동대문 운동장으로 나갔다고 증언하였다.

백기완, 이철우 등은 그 날은 몇몇이서 가까운 수락산 계곡에서 발을 담그고 계곡산행을 즐겼다한다백기완의 증언에 의하면 항상 산에 갈 땐 같이 갔는데 그 날은 왜 우리들에게 연락을 안하고 혼자 가셨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면서 우리들이 수행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하고 아쉬워 했다.


사고 당일인 8월 17일 등산 참가자 전원은 약사계곡에서 점심을 먹고 쉬고 있는데 장준하 혼자 약사봉에 오른다고 일행을 떠났다고 전해지고 몇시간 후 절벽아래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2001년 12월 11일                                                   

약사령 고개

 

가자 ! 약사봉으로 !
조금이라도 의심이 있으면 배낭 메고 나선 것이 오랜 나의 고집이다. 
모 방송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진행자의 장준하 의문사의 마지막 멘트가 묘한 여운을 주었는데 혼자 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정선배와 기철후배를 꼬득여 약사봉 산행을 

하기로 하고 철원으로 출발하였다.

 

기철후배가 운전하고 정선배와 나는 뒷좌석에 앉아 서울을 빠져나갔다 약사봉 산행은 포천보다는 차량접근이 용이한 신철원 용화저수지에서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삼부연 폭포를 지나 오룡굴을 빠져 나오자 용화저수지가 시야에 들어온다용화동에서 두 갈레의 산길이 있는데 명성산 정상으로 가는 길과 약사령으로 오르는 군사도로이다.

 

우리는 약사봉이 목적이므로 약사령으로 오르는 군사도로를 택하였고 차량을 농장입구에 파킹해 놓고 날카롭고 둔탁한 돌들이 널부러져 있는 군사도로를 40여분 걸었다.

 

40여 분 오르니 오른 쪽으로 오르면 명성산 삼각봉이고 왼쪽으로 오르면 약사봉과 각흘산으로 이어지는 약사령 고개이다.

약사봉에 앉아 약사령에서 삼각봉으로 이어지는 약사능선의 억새 밭이 가을의 솜털 같은 흐드러짐도 아니고 원색의 등산객들의 물결도 아닌 그저 해질 녁 시골 굴뚝에서 피어 오른 하얀 연기로만 보인다.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하얀 능선의 한 가운데에 포천을 지키는 파수꾼인양 국망봉이 우뚝 솟아있다.

눈을 깔아도 산이요 눈을 들어도 산이다이름없는 약사봉에 앉아 겨울의 삭풍도 없는 따스한 겨울 햇살 아래서 기철후배가 지은 라면을 안주로 소주 한 잔 들이키니 평시 두터운 검정 안경테를 걸친 장준하의 얼굴이 겹쳐온다.

 

장준하는 이곳 약사봉 14M 절벽에서 추락했다는데 과연 그 현장은 어디일까정선배와 나는 약사계곡으로 이어지는 급 경사면을 2시간에 걸쳐 샅샅이 훑었으나 사람이 추락하면 즉사할 만한 문제의 14M 절벽을 끝내 찾지 못하고 하산해야 했다. 사람들은 지금도 장준하의 의문사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KY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