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에 서서 1 [ 계유정난 편 ]
기행일자 : 2003년 4월 3일
1454년 10월 10일.
어느덧 해는 인왕산으로 넘어가고 송편보다 약간 배가 부른 초열흘 달은 큰 변이 일어나려는 한양 도성을 비추고 있었다.
인적이 끊어진지 오랜 도성 안은 가끔 순라 꾼의 타목 소리만 들릴 뿐이고 평온해 보이는 궁궐 안이지만 영양위 궁에서는 피바람이 불고 있었다.
“숙부, 나를 살려주시오”
단종은 소리 내어 우시며 수양대군 팔에 매달리신다.
수양은 콧수염을 한 번 쓰다듬고 가뿐 숨을 몰아쉬고 단종을 노려본다.
절제 김종서를 베고 급기야 대궐까지 들이 닥쳐 안평대군과 김종서의 역모사건을 밝히라고 단종을 협박하고 있다.
기어코 수양은 단종의 굴복을 받아내고 피 묻은 칼을 소매로 쓱쓱 닦고 칼집에 집어넣는다.
단종은 왕이었으나 절대 권력을 갖지 못한 군주였기에 계유정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문종과 현덕왕후 사이에 태어난 홍위는 이틀 만에 모후를 여의었지만 세종의 극진한
사랑과 집현전 학사들의 엄격한 교육으로 성장하시었고 대단히 총명했다 전해 내려온다.
홍위는 단종의 이름이다.
세종은 문종의 병약함과 수양의 호탕한 성격을 염려하여 늘상 집현전 학사들에게 어린 홍위를 지켜달라고 당부하시었다.
그러나 문종 승하 후 세종의 염려는 점점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하였고 팔삭동이 한명회와 떠돌이 권람의 만남은 계유정난으로 이어진다.
그 당시 권람은 남자로 태어나서 변방에서 무공을 못 세울 바에야 만 권의 책을 읽어 불후의 이름을 남기겠다며 책 상자를 말에 싣고 명산고적을 떠돌다가 운명적으로 한명회를 만난 것이다.
한명회, 권람의 모략과 신숙주, 정인지의 배신의 세월은 공포정치로 치닫고 풀의 이슬같은 부귀영화를 탐닉한 정난공신들은 더욱 깊은 탐욕을 맛보려 그 들의 수장인 수양을 부추겨 왕위를 찬탈하고 단종을 상왕으로 밀어내고 날개 없는 새가 되시게 하였다.
청량리역을 22시에 출발한 정선 구절리 행 완행열차는 붉은 서울의 속살을 벗어나 산골처녀 치마 속 같은 어둡고 음습한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나 밝은 기차 안은 오늘이 주말임을 암시하듯 등산객들이 돌리는 소주잔들이 춤을 춘다.
설중매라는 드라마를 보다 느닷없이 집을 나서 영월로 향한다.
영월 사람들은 영월을 충절의 고장이라고 부른다.
어린 단종이 이곳으로 유배 왔다가 비참한 최후를 마쳤을 때 많은 영월사람들이 하늘을
한탄하며 동강에 몸을 던졌기때문이다.
풀과 나무들의 본성은 겨울에 분명히 나타난다.
서릿발 치는 모진 바람이 밤을 새워 냅다 몰아치면 떨어질 잎은 죄다 떨어지고 뼈다귀만
앙상하지만 소나무만 끄떡없이 청청하다. 나는 영월을 소나무로 비유한다.
새벽 1시 55분.
나를 영월역에 내려준 가차는 종점인 정선을 향해 떠나려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은 듯 기적소리를 품어낸다.
조그마한 산간 역사 영월역은 마치 공작이 흰 띠를 두르고 있는 바로 그 모습이었다.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