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보리암과 웅석봉 (100대 명산 )
산이름 : 금산 ( 681m )
산위치 : 경남 남해군 상주면
산행일자 : 2007년 3월 10 ~11일
1박 2일 테마산행
교통편 : 42인승 버스대절
참조 : 63 동창회 박회장님의 두 번째 찬조
100대 명산 남해 금산은 박은철회장의 초청으로 고향 산청에 있는 웅석봉 산행 후 남해로 이동하여
금산을 찍는 뜻깊은 1박 2일 테마산행이다.
남해대교는 남해군과 하동군을 잇는 다리로 1973년 한국 최초의 현수교로 만들어졌다. 남해대교 밑을 통과하는 해협이 노량해협인데 수심이 깊고 조류가 심해 교각을 세우기 어려워 양쪽에 버팀목을 세워 다리를 연결하였다. 다리 길이는 660m이며 다리를건너면 아름다운 벚꽃길이 이어지는데 일본이 국내 최초로 벚꽃을 옮겨 심은 곳이 남해도이다
정유재란 때 광양에 정박해 있던 왜장 고니시유끼나까(소서행장)가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죽음을 알고 급히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시도하였으나 조명연합군이 뱃길을 열어주지 않자 사천에 정박하고 있던 시마스요시히로에게 명하여 구원을 요청하여 퇴로를 열고자 한 전투가 이순신 최후의 전투인 노량해전이다.
노량해협에서 약간 떨어진 관음포 앞바다에서 적의 유탄을 맞아 최후를 맞이하는데 만약 죽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역사학자들의 주장이 엇갈린다. 순신은 왜 전쟁이 종식되어 도망가는 왜군들과 전투를 벌렸는가하는 의문이다. 그것도 스스로 갑옷도 입지 않고 전투에 임한 것은 훗날 역사의 의문을 던져준 대목이다
관음포 앞바다에서 전사한 이순신의 시신을 최초로 묻어 놓은 곳으로 현재 사당인 이락사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싸움이 바야흐로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보리암 창건에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첫 째는 가락국의 김수로왕의 왕비가 인도에서 왔는데 그 때 같이 따라온 인도 승려인 장유선사가 지었다는 설과 원효가 금산의 경관이 너무 빼어나 금산 기슭에 보광사란 이름으로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원효가 좌선을 했다는 좌선대가 있다는 것을 보면 후자에 가까울지 모른다. 대광사는 조선 헌종부터 때 보리암으로 이름을 바꾸어 불렀다.
금산이라는 산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면 원래 보광산 이었으나 고려 말에 이성계가 보광사에 와서 백일기도를 하면서 개국을 하면 이 산에 비단으로 덮겠다며 호언을 하였으나 막상 조선을 개국 하고나서는 비단으로 온 산을 덮기가 불가능하여 그 대신 산 이름만 비단 금자를 써서 금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마치 호수처럼 생긴 바다를 둘러싸듯 펼쳐져 있는 2km 정도의 모래사장은 검고 가는 모래로 덮여 있으며 누구나 이 모래사장을 걸으면 시인이 된다. 통영이 고향인 박경리는 진주여고 시절에 방학 때면 항상 이 곳에 머무르면서 문학의 꿈을 키웠다.
이순신이 거북선에 사용했던 수많은 노를 노도에서 자생하는 삼나무로 만들었다 해서 섬 이름을 노도라 불렀으며 김만중의 유허비와 묘가 있다.
김만중은 문신이며 소설가인데 숙종 때 당파싸움에 휘말려 남해 노도에 유배되어 스스로 옹달샘을 파서 물을 마시고 솔잎과 피죽을 먹으며 생을 유지하면서 한글 최초의 소설인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을 썼는데 특히 어머니를 그리며 쓴 구운몽은 모든이의 심금을 울렸다한다.
미조항은 남해의 어업 전진기지로 어항이면서도 남해의 베니스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항이다.
북항과 남항이 나뉘어 있으며 남항의 갈치회는 미조항의 맛깔스런 음식의 백미이다.
어업 전진기지라 함은 1966년 서해안의 어청도부터 처음 생겼는데 급유시설, 어업 무선국,공동창고, 어획물을 공동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을 두루 갖출 수 있게 하는 다목적 어항을 말한다.
방조어부림이 내려다보인 곳에 남해군이 관광자원으로 조성한 전통 독일마을이다. 60년대 외화벌이의 상징인 서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은퇴를 맞이하게 되어 독일교포들을 정착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남해군이 조성하였다.남해군은 독일 주택의 사실감을 나타내기 위해 건축 자재 일체를 직접 독일에서 수입하여 지었다.
사진 캡쳐
남해와 사천을 잇는 다리로 창선대교, 초양대교, 늑도대교, 삼천포대교와 연결되어 있다.
창선대교의 지족해협은 조류유속이 빨라 죽방렴 조업의 최적지이다.지족해협에는 24개의 죽방렴이 설치되어 있는데 죽방렴이란 참나무와 대나무를 개펄에 V자형으로 조밀하게 박아서 그물처럼 만든 원시적인 고기잡이 시설이다.
조류가 흘러들어 올 때 따라 들어 온 멸치떼들은 일단 죽방렴에 들어오면 밖으로 나갈 수 없다.잡힌 멸치들은 몸이 상하지 않아서 죽방멸치라는 브랜드로 최상품으로 간주되어 가격이 비싸기로 유명하다.
KY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