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름다운 산하/한국 100대 명산 완등기록

자연보호 발상지 금오산 (100대 명산 )

케이와이지 2020. 8. 30. 09:51

산이름 : 금오산 ( 976m )

산위치 : 경북 구미시 남통동

산행일자 :  2007년 3월 25일

교통편 : 42인승 버스대절

 

가장 높은 봉우리가 금오산 정상입니다

금오산 주차장

  
구미시는 옛날에는 농업 중심인 선산군 구미면 이었으나 이곳 출신인 박정희대통령이 1970년대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펴면서 구미공단을 조성하였다.


공단과 주택이 혼합된 도시를 만들어 구미면을 구미시로 승격 시키고 반대로 선산군을 선산읍으로 격하시켜 구미시 밑으로 했다.

우리나라 개발의 문제점을 최초로 들어낸 도시가 되었다. 농사만 짓던 구미면 농민들이 갑짜기 공단이 들어서고 도시가 형성되니 보상 받은 돈으로 흥청망청 쓰다가 폐가 망신 하는 피혜가 속출했다.

공단들이 민주노총으로 몸살을 앓고 문을 닫거나 철수를 하여 썰렁하고 그나마 공단 최대의 엘지엘시디가 파주로 이전하여 공허함을 더욱 재촉한데 파주의 물이 좋지않아 제품의 불량품이 많다는 말이 분분하다.
 
금오산은 경부고속도를 달려본 사람은 아 저것이 금오산이야 하고 놀란다. 구미를 지나던 아도화상이 저녁놀 속으로 황금색 까마귀가 나는 것을 보고 원래 산 이름인 대본산을 금오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1970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78년 10월 5일 자연보호헌장이 이곳에서 발표 되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거대한 바위에 자연보호헌장 문구를 새겨 맨땅에 박아 놓은 기념비에 자연보호의 이질감을 느꼈다.

어딘가의 산에 가만히 있는 저 거대한 바위를 기중기로 옮겨 세워 놓고 자연보호 한답시고 글씨를 새겨 놓았는데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두어야 진정한 자연보호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구미시는 낙동강을 끼고 있어 예부터 군사요충지로 한양과 부산을 잇고 있는 길목이며 병자, 임진 국가적 란 때마다 군, 관, 민이 한꺼번에 피난을 했던 곳으로 금오산 정상부근에는 내성이 있고 중턱에는 외성이 있다.  
 

 

채미정 입구

 

어쨌든 자연보호헌장이 쓰여진 거대한 바위를 뒤로 하고 채미정으로 가본다. 채미정은 야은 길재를 추모하는 공간으로 정자형식으로 되어있다.


야은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조선조 영조가 건립했으며 경상북도 기념물 55호로 지정되어 있다

채미라는 뜻은 고사리를 채취하다는 뜻으로 은나라 왕자였던 백이숙제는 다음 왕조인 주나라의 음식을 먹지 않겠다며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고 살았다는 백이숙제의 고사를 유래하여 이름을 지었다.
 
야은 길재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관직을 고사하고 고향인 구미로 내려와 금오산에서 고사리를 캐먹고 은거생활을 했다한다. 야은의 묘소도 이 근처에 있다. 채미정이란 의미는 채취한다 채, 고사리 미, 정자 정의 뜻이다.
 
 

채미정

 

야은 길재가 망국의 한을 담아 지은

시를 소개합니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을 간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련가 하노라"
 
고려말의 삼은이란 야은 길재,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를 말합니다.

 

은이라 하면 은둔이란 뜻인데 정몽주는 은둔을 하지 않고 벼슬을 하다 이방원 일파에 살해 당했기 때문에 은을 넣는 것은 아마 후세 사람들이 예우 차원에서 불러 준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금오산 입구

 

대혜폭포

 

 

구미시가 한 눈으로 내려다 보입니다

약사암. 범종. 구미시

 
약사봉 아래에 약사암이 지어졌는데 관악산의 연주암을 연상하고 중국의 어느 암자처럼 신비함을 주고 있다.
약사암 건너에는 종각이 있으며 그 안의 범종은 박정희가 기증한 것으로 그 자식들은 물론 구미 유지들이 종각에 홍보성 이름을 마구 써놓아 볼품없이 보였다.


그 종각을 가기 위해서는 출렁다리를 건너야 하고 유난히 출렁거려 무섭기 까지 하다.
 
                           KY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