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름다운 산하/한국 100대 명산 완등기록

축령산 남이장군의 전설(100대 명산 )

케이와이지 2020. 8. 31. 05:17

산이름 : 축령산 ( 879m )
산위치 : 경기도 가평군 & 남양주시 경계
산행일자 :  2010년 2월 18일 시산제
교통편 : 42인승 버스대절

 
2010년 시산제를 축령산에서 했는데 그 당시
사진 자료가 없어 아래 사진으로 등록합니다

축령산 / 2020년 산행

 
축령산 중턱에 있는 축령백림은 가평 8경에 속할 정도로 잘 조성된 무장애 수목원이다.
 
축령산의 유래에 남이장군의 설화가 전해 오는데 남이바위가 있는 것을 보면 알 수있다. 남이는 남이바위에서 수련을 했다고 전해진다.
 
 

남이바위

 
남이는 의령남씨로 태종의 외손이며 안동권씨 권람의 사위이며 서울 연지동에서 태어났다.
 
세조 3년 17세의 나이로 무과에 합격하여 혁혁한 공을 세워 세조의 총애를 받으며 26세의 나이에 병조판서에 오른다.
 
세조가 죽고 예종이 즉위한 후 궁중에서 숙직을 하던 남이는 혜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 묵은 것이 가고 새 것이 나타날 징조다“ 라 해석을 하자 유자광이 왕에게 역모를 꾀한다고 무고를 하면서 백두산 시를 증거로 내놓는다.
 
백두산 시는 남이가 백두산 등지에서 여진족을 물리치면서 지은 시로 유자광은 ‘남아 이십 말 평국’을 ‘남아 이십 말 득국’으로 변조하여 예종왕에게 올렸다.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어졌네 남자로 태어나서 20세에 나라를 편케 하지 못하면 뒤 세상에 어찌 대장부라 하겠는가”
 
오래전부터 남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예종은 이를 빌미로 남이를 제거했는데 나이 스므여덟 살이다.
 
세상 사람들은 남이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그가 어려서 무술을 연마한 이곳 산을 축령산이라 부르고 남이가 좌선을 했던 곳을 남이바위라 한다.
 
남이섬은 예전에는 섬이 아닌 육지로 가평군으로 되었으나 청평댐을 만들어 섬이 되었고 춘천으로 편입이 되었다. 애초엔 나무가 많아 나무섬이라 불렀으나 남이의 뼈가 묻어있는 돌무덤이 발견되어 그 위에 봉분을 세우고 남이이 묘라 하고 남이섬이라 부른다.
 
 

남이섬 남이 묘비

 
실제로 남이의 묘는 화성군 비봉면에 있고 남이섬을 허묘로 부르고 있다. 남이섬에 시비를 쓴 노산 이은상은 남이의 묘가 어디가 진실이던 남이를 알리는 것이 나쁠 것이야 없지않느냐 하매 의령남씨들도 그대로 받아드리는 입장이다.
 
                                   KY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