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름 : 장안산 ( 1,273m )
산위치 : 전북 장수군 계남면
산행일자 : 2011년 3월 12일
교통편 : 42인승 버스대절
장안산은 전북 장수군 계남면에 위치한 해발 1,237m의 소백산 서쪽 비탈면을 이루고 있는 산이며 억새가 장관을 이루고 울창한 원시림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는 덕산계곡을 끼고 있어 일찍이 장순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이에 한국 100대 명산에 선정되었다.
장안산의 이름은 예부터 이곳에 장안사라는 큰 절이 있어 산 이름을 장안산이라 불렀으며 산행의 들머리는 해발 850m의 무룡고개부터 시작하여 덕산계곡을 거쳐 범연동으로 하산하는 산행코스를 잡았다. 장수군도 진안고원의 한 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평균 500m의 고원지대이므로 크게 힘든 산행은 아니다.
무룡고개를 오르는 743번 지방도가 있는 지지계곡을 기준으로 해서 서쪽의 장안산은 전북 장수군이고 동쪽으로 백두대간을 이루는 백운산이 있는 곳은 경남 함양군이므로 장안산은 전북과 경남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라 보면 될 것이다.
무룡고개에서 장수산 정상까지의 평탄한 등산로에서 만나는 억새군과 멀리 조망되는 덕유산의 연봉과 함양 황석산의 일망무제가 장안산 산행의 포인트이다.
멀리 완만한 봉우리가 장안산 정상이다.
장수산의 또 하나의 명소는 덕산계곡으로 크고 작은 소가 10개나 분포되어 있다. 덕산계곡은 1990년에 발표한 영화 남부군의 촬영지로 알려져 있는데 안성기, 최민수, 고 최진실 등이 출연하고 정지영감독이 메카폰을 잡았다.
남부군은 모택동의 16자 게릴라 전법을 몸에 익혀 회문산에서 국군과의 치열한 공방 끝에 회문산을 탈출하여 덕유산까지 도망치는 과정을 묘사한 영화로서 모택동의 16자 전법은 다음과 같다.
적진아퇴:
적이 공격하면 아군은 퇴각한다.
성동격서:
동쪽에서 소란을 피우고 서쪽을 공격한다.
피실격허:
견고한 곳을 피하고 허술한 곳부터 공격한다.
이정화령:
모든 것은 있다가도 없어지므로 함부로 나서지 말라.
이상 총 16자로 되어있어 16자 전법이라 한다.
바람처럼 빠르고 숲속같이 조용하고
불길처럼 진공하고 산처럼 움직이지 않고
어둠처럼 찾기 어렵고 번개같이 움직여라
빨치산 전술의 요체는 이처럼 기밀과 신속함에 있다 볼 수 있다.
장수의 의녀 주논개
장수군 의암호 옆에 논개를 기리는 의암사라는 사당이 있다. 장수에 가면 당연 둘러봐야 할 코스지만 글로 만나 보기로 한다.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논개라 부르지만 논개도 성이 있는데 중국에서 유래된 신안 주씨이며 주논개라 불러도 되지만 그 당시 여성에게는 성을 붙여주지 않는 관습이 있었던 것 같다.
논개는 1574년 장수군 주천마을에서 훈장을 하던 아버지 주달문과 어머니 밀양박씨 사이에 태어났다. 논개는 나름 양반가의 딸이었던 것이다.
논개가 5세 때 아버지가 죽으매 어머니는 딸과 자신의 생계를 시동생인 주달무에게 의탁하지만 시동생은 도박에 미쳐 가산을 탕진하고 하물며 논개를 마을 부자이던 김풍헌의 집에 민며느리로 팔아먹고 도망간다.
딸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어머니는 논개를 데리고 친정으로 도망을 갔다. 금전적으로 피해를 본 김풍헌은 관아에 고발하였고 이들의 재판을 맡은 사람이 당시 장수 현감이던 최경회였다.
최경회는 전라도 능주 사람으로 기대승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1567년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최경회는 모녀의 딱한 사정을 알고 무죄 방면하고 모녀가 살길이 막연하자 관아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살게 하였다.
장성한 논개는 최경회의 첩으로 들어갔고 이윽고 임진왜란이 터지자 전라도 지역에서 의병장이된 최경회를 뒷바라지 하였다. 1차 진주성싸움에서 김시민을 도와 혁혁한 공을 쌓아 경상도우병사가 된 최경회가 진주로 가게 되자 논개도 따라갔다.
1593년 7월 일본군은 10만 병력을 앞세우고 전라도 길을 열기위해 진주성 공격에 온 힘을 쏟았다. 역사는 이것을 제 2차 진주성싸움이라 말한다.
전투는 7일간 계속 되었으며 결국 진주성은 7월 29일에 왜군에 함락되었고 성이 함락되던 날 최경회는 김천일 등과 함께 남강에 투신하여 자살하였다.
진주성에 진입한 왜군은 보복이라도 하듯이 성안의 민간인과 살아있는 동물을 모두 학살하고 주변을 약탈했으며 승리에 도취되어 촉석루에 술판을 벌였다.
이때 논개는 관기로 위장하고 관기들 틈에 끼어들어 술에 취한 왜장 중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꾀어내어 남강의 바위 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를 안고 그대로 강물에 투신하였다. 논개 나이 19세였다.
논개의 실체는 임진왜란 17년 이후 광해군 때에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당시 문신이자 작가인 유몽인이라는 선비가 지은 “어우야담”이라는 문헌집에 논개의 이야기가 처음 실렸기 때문이다. 어우여담에서 논개의 이야기가 다음과 실려있다.
"논개는 진주 관기였다.
계사년에 김천일이 의병을 일으켜 진주를 근거지로
왜병과 싸우다가 마침내 성은 함락되고 군사는
패하고 백성은 모두 죽었다.
이때 논개는 분단장을 곱게 하고 촉석루 아래 가파른
바위 꼭대기에 서있으니 아래는 만길 낭떠러지요
사람의 혼이라도 삼킬듯한 남강의 푸른파도가
넘실거렸다
왜병들은 논개를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을 뿐 감히
움직이질 않자 어느 왜장이 풍채를 자랑하며
논개에게 가지 않는가!
논개는 요염한 웃음을 흘리면서 왜장을 맞았다.
왜장의 손이 그녀의 몸을 잡자 논개는 힘껏 왜장을
끌어 안는가싶더니 마침내 몸을 만길 낭떠러지
아래로던졌다. 둘은 모두 죽고 말았다"
K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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