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식 에세이

식기 전에!

케이와이지 2018. 1. 4. 02:24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터미널에 도착한 심야 우등버스는 몇 안되는 사람들을 토해내고 바쁘게 사라진다. 겨울 한기 속 낯선 땅에 냅다 던져 버려진 내 꼴이 아무래도 우습다. 우선은 한기를 피해야겠다 싶어 눈부시게 환한 편의점으로 들어가 아침식사 겸 컵라면 하나 들고 후루룩 목으로 들어가는 얼큰한 국물이 식도를 통과하자 내가 참으로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구나 새삼 느껴진다. 지진 피해에 고통을 겪어야 했던 경주는 이렇게 나를 맞이하였다. 선린 100대 명산 채우기로 건성으로 올랐던 남산을 나 혼자 올라야 한다. 비록 피할 수 없는 사람인 고인의 조의를 표하러 왔지만  내 혼자 꼭 올라야겠다는 일념으로 이렇게 꼭두새벽에 경주에 도착했다.

 

경주 남산은 수 많은 석탑, 불탑, 비석, 기와편들이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져 신라 서민들의 생활과 신앙을 그대로 투영하는듯 누워있어 그 잔잔한 애잔함이 내 마음을 송두리채 역사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신라의 문화는 삼국통일 이후에 황금기를 이루었는데 이 곳 남산의 문화도 예외는 아니다. 통일 이후 전쟁의 불안에서 해방된 신라인들이 그 여유러움을

불교에 쏟은 열정이 여기 저기서 감지된다. 신라인들을 그토록 여유로운 생활로 변화시킨 삼국통일의 원천은 과연 어디서 부터 나왔는가? 내가 남산을 다시 찾아 그 원천을 알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역사가들이 말하듯이 나 역시 화랑정신에서 시작 되었다 믿는다.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화랑도의 전설은 많다. 화랑도는 15세부터 18세까지의 청소년들로 구성된 단체인데 그 우두머리를 화랑으로 칭하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낭도라 부른다. 화랑도 설화는 주로 낭도가 아닌 화랑들의 이야기인데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수 많은 화랑이 탄생하고 꽃잎처럼 사라져갔다. 우리가 역사책이나 상식편에서 늘 등장하는 화랑을 손꼽아 본다면 품일장군의 아들인 황산벌의 영웅인 관창,  김유신의 아들인 원술랑. 향가인 모 죽지랑가의 주인공인 죽지랑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화랑이 있는가 하면 음지에 있는 화랑도 있다. 그 대표적인 이름이 화랑 사다함이다.

 

신라가 가야국을 정벌하는데 큰 공을 세운 사다함은 낭도이자 친구인 무관랑을 평소에 좋아하였으며 둘이는 다음과 같이 맹세하였다.

" 네가 먼저 죽으면 내가 따라 죽고 ,

내가 먼저 죽으면 네가 따라 죽기를 약속하자" 

그 뒤 무관랑이 먼저 병으로 죽으매 사다함은 목

놓고  통곡하며 슬피운지 이렛만에 친구를 따라

죽었는데 그때  사다함 나이 17세 였다.

사다함이 지은 시 한 수 소개한다.

 

 

" 잔을 들어

 사랑으로 고인 잔을

 식기 전에 이 잔을 들어

 

 피는 뛰어

 피는 살어

 이 젊은 피는 붉어 붉어

 

 님아  아손님

 늘 보아도 아손님

 고이려 고이려 무엇으로 고이려

 

 지고져 나는

 애달픈 꽃이여

 시들기 전에 져 버리리고져 ! "

 

남산에 서서 옛 도읍 서라벌을 내려다 본다. 어린 꽃다운 화랑도들은 저 들판을 누비며 통일의 꿈을 꾸었으리라!

내려오는 길에 잠뱅이 옷을 걸친 노파를 만났다. 한 손에 쥔 낡은 지팡이에서 사다함을 만났고 짊어진 낡은 바랑에서 신라인을 만났다.

 

                K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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