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름다운 산하

두타연에서 펀치볼까지

케이와이지 2020. 9. 22. 14:07

역사를 찾아가다

날자 : 2016년 6월 26일

장소 : 두타연. 펀치볼

위치 :  강원도 양구군 방사면, 해안면

교통편 : 42인승 대절버스

 

 

오늘 산행 코스는 두타연을 답사하고 양구 전쟁기념관과 펀치볼이라는 불리는 해안분지을지전망대, 4땅굴 등을 두루 둘러 보고 펀치볼의 특산물인 시래기 전문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귀경하는 코스로 짰다.

 

두타연 조각공원

두타연 조각공원

 

산행계획에 두타연과 펀치볼을 넣었을 때의 마음처럼 집을 나서는 마음도 무거웠다전쟁 경험을 해보지 못한 세대가 한국전쟁의 심볼인 양구에 가서 나라를 위해 죽은 자들의 영령에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 것인가를 확실히 정하지 않은 체 전세 버스는 북동쪽으로 미끄러지듯 달려갔다.

 

두타연이 일반인에 공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비로움도 있었겠지만 6.25 전쟁의 격전지를 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오늘도 버스는 만석을 이루었다.

 

차내는 서로의 군대 생활 추억의 정담을 나누며 소란스럽고 군대를 경험하지 못한 엄마들은 차창 밖의 스쳐가는 경치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차창 밖만 응시할 뿐이다.

 

 

두타연 전망대

 

두타연은 양구군 방산면에 위치한 산세와 경관이 뛰어난 두타계곡의 두타폭포 아래 연못을 말하며 1천여 년 전에 이곳에 두타사라는 절이 있어 두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민통선 북방이 관계로 예전에 일반인은 들어갈 수가 없었지만 최근에 일반에 공개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한다

 

두타연

두타연

 

이제 양구로 이동한다

거대한 조형물이 우리를 맞이한다

양구 전쟁기념관

 

전쟁기념관 조형물

 

민주주의를 지킨 어느 병사의 휴식

 

양구 지역은 6.25 전쟁 때 고지가 많은 지형적인 특색으로 피아간의 전투가 가장  심한 곳이었다주로 1951년 후반부터 휴전협정이 알려지면서 서로 많은 땅을 확보하려고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지만 휴전협정은 지리멸멸하게 이어지다 1953727일 체결되었다

 

양구 지구 주요 전투는 도솔산 전투, 가칠봉 전투, 펀치볼 전투, 피의 능선 전투단장의 능선 전투 등 양구지구 9개 전투의 공통점은 모두 19518월부터 10월 말까지 이루어진 것이다.

 

두타연 지근에 있는 방산면 현리의 피의 능선과 그 북쪽으로 11km에 걸쳐 이어진 단장의 능선 전투는 6.25 전쟁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피의 능선 전투 

아래  두 개의 사진은 피의 능선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  미 8군 포병대대가  지원 포격을 하는 사진이다.

 

강원도청 자료 제공

< 피의 능선 전투 >

1951 8.17.부터 9.5일까지 20여일 치러진 이 전투는  2사단과 그에 예속된 국군 5사단 36연대 병력으로 이루어졌다.

이 전투로 미군과 국군 4,000명이 전사하였으며 세 개의 고지 능선에 사상자들의 피가 능선에 물들었다 해서 피의 능선이라 명칭 했다.

 

2004년 제작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 전투의 처절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영화의 주연은 장동건과 원빈이다.

 

피의 능선 전투전적비

 

 

 단장의 능선 전투

19519.13.부터 10.13일까지 1개월간 치러진 이 전투는 2사단과 프랑스 대대가  참가한 전투로 4만 명이 죽거나 다친 그야말로 사상 유래가 없는 참혹한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종군기자들이 심장이 부셔지는 것 같다고 표현하여 단장의 능선 전투로 명명되었다이때 미군이 쏜 포탄이 20만 발이 넘었다 하니 가히 상상을 초월한 전투임에 틀림없다.

 

아래 사진은 미군 행렬이 단장의 전투에 투입되는 사진이다.

 

강원도청 자료 제공

 

펀치볼 전투 

일명 해안분지 전투라 불려진다양구군 해안면의 해안분지는 해발 400m이며 이를 둘러싸고 있는 고지에서 치러진 전투이기 때문에 펀치볼 전투라 부른다.

 

펀치볼은 영문으로 화채 그릇을 표현하는 말인데 어느 미 해병이 고지에서 내려다보인 해안분지가 마치 화채 그릇같다하여 펀치볼이라 부르게 되었다.

 

1951년 8월 31일 부터 9월 21까지 20일 동안 치러진 전투이다. 미 해병 1사단과 예속된 국군 해병 1연대가 투입되어 펀치볼 능선의 모택동 고지와 김일성 고지를 점령하고 일대의 고지까지 확보하는 전과를 올린다.

 

이처럼 펀치볼을 중심으로 가칠봉 전투, 도솔봉 전투가 치열했던 것은 그만큼 해안분지가 전략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이제 전흔이 사라진지 어언 65년이 지났다

평화스런 해안분지 아니 펀치볼의 모습을 보자

운무에 갇힌 펀치볼

 

펀치볼 전경

 

펀치볼 시래기 밭

 

                             KYJ

 

 

 

 

 

 

 

 

 

 

 

 

 

 

'한국의 아름다운 산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봉마을과 바래봉 철쭉  (0) 2020.10.12
괴산 산막이옛길  (0) 2020.10.08
복계산과 매월당 김시습  (0) 2020.08.28
운길산 수종사의 비밀  (0) 2020.08.27
금대봉 야생화와 검룡소  (0) 2020.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