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역 앞 광장 딱딱한 나무의자에 촌노들이 앉아있다. 짐 봇다리가 없는 것을 보면 어딘가로 떠나는 것 같지는 않다.
마땅히 할 일이 없는 노인들이 세월을 기다리면서 혹시 지나는 지인이라도 만나면 막걸리 한 사발 걸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어서이다.
대합실과 역무원 사무실과는 유리창문이 가로 놓여있고 그 옆으로 표 파는 곳이 빼꼼이 나와 있다. 표 파는 곳의 두꺼운 플라스틱 창에는 구멍이 촘촘히 뚫려있는데 역무원과의 의사 소통은 그 구멍을 통해야만 가능하다.
" 광주가는 표 하나 주시요잉 " 이내 달카닥 하고 두터운 기차표 한 장이 쑥 튀어나온다. 어린이 표는 비스듬히 반으로 싹둑 짤려 나오는 것이 재밌다.
시골역을 배경으로 우리네 시골사람들은 애환도 많다. 작은 이별에도 크게 슬퍼하고 커다란 기쁨에도 눈물 떨구어야 했던 그 순박한 애환은 어느 영화의 한 장면 보다 더 진솔하고 아름답다. 이 나이 되어 그 숱한 애환은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진지 오래지만 보성역에서의 어머니의 환상은 그대로 남아 있다.
광주 학창시절 두어 달에 한 번씩 보성에 갔다 돌아 올때는 버스 보다는 더 안전한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상례인데 그 때마다 어머니는 보성역 까지 따라 나서신다. 집에서 보성역까지는 걸어서 약 30분 정도 걸린다. 어머니는 분홍색 쉐터 주머니에서 꼬깃 꼬깃 구겨진 10원 짜리 종이 돈 두 서너장을 내 손에 꼭 쥐어 주신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꼬박 3년 동안 한결 같으신 우리 어머니시다.
그 당시 보성역에는 많은 코스모스가 피어 있었다. 기차가 들어 올 때나 나갈 때는 무수히 많은 코스모스는 하얗고 파란 꽃잎을 휘날리며 하늘거리기 시작한다. 꽃잎 몇 개 떼어 바람결에 흩날려 보면 팽그르르 팔랑개비처럼 하늘을 돌면서 날아 오르다 떨어진다.
언제 또 보랴 싶어 이리 보고 저리 두리번 거린 사이에 플랫폼 역무원의 손 짓은 곧 기차가 들어오니 물러서라는 신호인 것이며 그 몸짓은 여지껏 나만의 향수로 진하게 남아 있다.
도시에서 속절없이 살다가 명절이거나 어느 계기가 되어 고향을 생각하게 되면 지금껏 뭔가에 떠밀리는 둣이 살아 온 내 인생을 발견하게 된다. 이 속절없는 생활은 앞으로 언제 어디까지 떠밀려가야 끝나는 것일까!
k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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