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식 에세이

영월에 서서 2 [ 청령포 편 ]

케이와이지 2018. 3. 11. 13:16

                                                                                                                    

영월 서강 청령포

영월역 앞 낯선 여관에서 잠시 눈을 부치고 영월에 서니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우뚝 선 봉래산과 구릉을 깎아 조성한 영월읍내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정선에서 내려 온 비교적 유속이 빠른 동강과 청령포를 거쳐 내려 온 유속이

느린 서강이 합류하여 남한강으로 이름 부쳐진 넓은 강이 퍽 인상적이다.


영월역에서 청령포 까지 택시로 5분 거리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관리소 직원들은 출근 전이었고 조금 일찍 나와 석유난로를

피우고 책상 청소를 하고 있던 매표소 아가씨가 앉아있는 내 모습이 쳐량했는지

커피 한 잔을 내주고는 하던 일을 마저 한다.


매표소에서 건너 보인 청령포는 근접할 수 없는 거대한 요새처럼 보였으며 거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건널 수 없는 강폭이다.
수양은 어찌 이 아름다운 청령포를 알아내 유배지로 삼았을까 진한 궁금함을 품었지만

그 해답은 뒤 늦게 출근한 매표소 소장의 설명으로 풀렸다.
그 당시 영월군수가 신숙건 이었는데 신숙건이 조정에 추천했다한다.
신숙건은 신숙주의 친척이다.

9시가 되자 사람들이 모여들고 첫 거룻배가 청령포를 향해 건너간다.
강원도 기념물 5호로 지정되어 있는 청령포는 매우 아름다웠으며 숲 속으로 들어 가면

상상외로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은 머나먼 이곳 까지 오셨다.

산 넘고 강 건너 또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비에 젖고 볕에 그을리시면서 꼬박 이렛 밤을

보내시고서야 이곳에 도착하셨다. 칠월 초생달에 두견새 슬피 울 제 하늘에

사무친 한을 품고 이곳에 오셨다.

단종의 나이 16세 이셨다.


단종을 청령포에 모셔놓고 한양으로 떠나기 전날 밤 금부도사 왕방연은 찢어지는

자기의 마음을 노래로 읊었는데 그 시는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온다.
               

 

왕방연 시조비

 

천리 머나먼 길
고운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도다
울며 밤길 예 노매라

 

단종의 어소가 있었던 곳은 이제 달랑 유지비만 세워져 있었고  600년 묵은 관음송이

그 옆에서 유지비를 지키고 있다.


단종이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여산 송씨를 생각하며 그리움으로 돌을 쌓았다는 망향탑!

망향탑


매일 시름에 싸여 한양을 바라보며 언제 한양에서 부를까 고대하며 계시던 노산대!

노산대

 


“ 동서 삼백 척, 남북 구십 척” 으로 쓰여진 금표비 앞에서는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조선시대는 1척이 32cm 이었으니 가로(동서) 96m, 세로(남북) 28m의 직사각형 안에서만 생활토록 행동반경을 제한했으니 어린나이에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금표비


단종은 이 좁은 공간에서 2개월 동안 생활하시다 그 해 8월에 이곳에 큰 홍수가 나청령포가 물에 잠기자 처소를 읍내 관풍헌으로 옮기셨다.


어린 단종이 무섭도록 외로운 나날을 피눈물로 지내셨던 청령포!
나는 이제 이곳을 떠나려한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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