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식 에세이

영월에 서서 4 [ 장릉 편 ]

케이와이지 2018. 3. 13. 11:47

 

영월 장릉 가는 언덕

 

장릉 가는 길은 관풍헌에서 제천가는 국도로 30여 분 걸으면 된다. 택시를 탈까 했지만 도로변 곳곳에 엄홍도 후손들이 세운 비각도 답사할 겸 걷기로 했다. 장릉은 사적 196호 지정되어 청령포와 더불어 영월의 명승지로 부각되었지만 사람들에겐 영월이 동강 비경으로만 비추어져서 아쉽다.

장릉 입구에는 관광버스 세 대가 서있고 여느 관광지처럼 주변엔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매표소를 통과하고 숙연한 마음으로 능길로 올라서니 어디서 왔는지 바람이 따라온다.

몇몇 제각을 지나 잔디밭을 건너자 따라오던 바람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고 주위를 몇 번

두리번거리더니 동을지산 넘어로 사라졌다.
가파른 능길을 오르고서야 단종의 무덤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보아왔던 어느 왕릉 보다 작은 모습으로 많은 돌비석의 보호를 받으며 누워 계셨다.

문득 엄홍도의 얼굴이 궁금했다. 밤을 세워 아들과 함께 단종의 시체를 여기까지 지고 와서

묻을 때의 엄홍도의 심경은 어땠을까? 무섭지 않았을까!


단종 사사 당시 시체를 걷은 자는 가족을 멸한다는 수양의 추상같은 명을 영월의 말단

벼슬인 호장인 엄홍도가 모를 이가 없었을텐데......



영월 장릉

 

오랫동안 벼르고 왔어요, 생각 같아선 초라도 켜놓고 예라도 올리고 싶지만

관리사무소에서 그런 일을 금지 시켰다네요.”


대구에서 왔다는 50대 아주머니가 단종의 무덤에 소주를 뿌리며 내게 말을 건네고

무덤 주위를 돌면서 뭔가 주문을 왼것 같았지만 때마침 지나는 바람소리에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유방이 장량이 없었으면 한고조를 세웠을까?
수양이 한명회가 없었으면 임금이 되었을까?
그들은 필연의 만남이었고 그 만남이 후손들에겐 필연의 역사로 점철되어 끈질기게

이어지며 역사의 성과나 과오로 남게 된다.


누가 역사는 죽은 자의 기억이라 했던가?
역사는 사람에 따라 바뀐다. 단종과 세조의 역사 또한 사람에 따라 바뀐다.
허지만 바뀌지 않은 것이 하나가 있다.

한(恨)이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인물일수록 그 사람의 무덤은 한으로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고 분노와 통곡으로 진동할 것이다.


나는 그 동안 역사에 대해 너무 관대하지 않았나하는 마음으로 장릉을 떠나려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그 시대의 인물들을 어떻게 송두리째 다 알겠냐만은 그 시대의 시대적 배경과 역사가들의 문헌을 참고하면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한편으로는단죄할 것은 단죄해야 한다는 나의 역사관을 다시한번 상기 시키면서 능길로 내려섰다.


한기가 남아있는 계절의 길목에서 의심의 배낭을 짊어지고 영월에 섰건만 그 동안 가졌던 단종의 한의 정서와 애상의 정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종과 이별하고 능 길을 내려서니 동을지산 넘어로 사라졌던 바람이 다시 찾아와 앞장을 선다.


출구를 빠져나와 안녕을 고하니 바람이 내 귀에 속삭인다.


“ 그대여! 과거에 너무 집착하면 한 발자국도 더 나갈 수 없다네.”
“ 나는 이미 모두를 용서했다네.”
“ 날 찾아줘 고맙네, 잘 가게.” 
     

[에필로그]                          

 나이 18세에 단종과 생이별을 한 단종비 정순왕후 여산 송씨는 궁을 나와 숭인동

동묘역 북쪽 동망봉 기슭에 초막을 짓고 홀로 살았다.

 

동망봉은 일제강점기 때 채석장으로 훼손되었으나 일부 남아 그곳에 동망정과

단종비가 기거했던 초막을 동망각으로 복원하여 지금도 역사 답사코스로 공개하고 있다.
동망봉은 단종비가 동쪽에 있는 영월을 향해 통곡했다하여 후에 이름 붙혀진 이름이다.


단종비는 세조가 제공한 생필품을 일절 받지 않고 초막에서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이것을 알게 된 백성들이 매일 숭인동 초막으로 생필품을 전달하려 모여들기 시작하게

되어 숭인동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면서 자연히 지금의 숭인시장이 형성되었다.

 

단종비는 숭인동에서 60년을 홀로 지내시다 1521년6월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리에 있는 사릉에서 단종과 떨어져 홀로 누워계신다.

 

                                kyj





'비공식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종사 삼정헌에서!  (0) 2018.05.14
황진이가 그리운 계절  (0) 2018.05.09
영월에 서서 3 [ 관풍헌 편 ]  (0) 2018.03.12
영월에 서서 2 [ 청령포 편 ]  (0) 2018.03.11
영월에 서서 1 [ 계유정난 편 ]  (0) 2018.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