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령포에서 관풍헌 까지는 교통편이 불편해 택시를 탔다. 구릉이 심한 영월읍내 지형처럼 굴곡이 심한 도로에 “영월다방”이라 도색된 경승용차가 쏜살같이 지나가는데 차 안에 두 명의 아가씨가 타고 있다.
티켓다방이 성행한 산간 도시의 독특한 문화를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다.
영월객사인 관풍헌은 읍내 한 복판 중앙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규루가 그 옆에붙어 있다.
객사란 주로 중앙에서 출장 온 관료들이 머무르는 공간을 말하며 단종은 청령포에서
이곳 객사로 처소를 옮기셨다.
청령포 보다는 주거 환경이 좋아 불편함은 어느 정도 해소 됐지만 외로움은 여전 하시어 늘 자규루에 오르셔서 봉래산을 바라보시며 시를 읊으셨다.
제왕의 자리에서 쫒겨난 어린 임금이 두견을 벗 삼아 시를 읊으셨다 해서 오늘날
우리는 그 시를 자규사라 부른다. 자규는 두견이의 옛말이다. 자규사 한 부분 소개할까 한다.
“원통한 새가 되어 제궁을 나오니
외로운 그림자 산 중에 홀로 섰네!
밤마다 잠들려 해도 잠을 못 이루네
어느 때 되어야 이 한이 다 할까!"
"두견새 소리 그치고 조각달은 밝은데
피눈물 흘러서 골짜기에 지는 봄꽃이 붉구나!
하늘도 저 슬픈 하소연을 듣지 못하는데
어찌하여 시름에 젖은 내 귀에 잘 들리는가!"
그 해 9월 한양에서는 또다시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운동을 빌미삼아 이제는 완전히
싹을 없애고자 노산군을 서인으로 강등시켜 사사의 명을 내린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금부도사 왕방연이 이번엔 저승사자가 되어 사약을 가지고
내려왔으나 왕방연은 차마 사약을 내려놓지 못하고 엎드려 펑펑 울고만 있으니
사사시간이 지나버렸다.
이에 공명심에 불탄 공생 한 놈이 활시위를 들고 단종에 달려 가서는 목을 활시위로
졸라매고 문턱으로 질질 잡아당기니 단종은 뒤로 넘어지시면서 질질 끌려가시다
절명하시었다.
왕방연은 수양이 시킨 대로 군사를 시켜 동강에 뛰우게 했는데 단종의 시체가 떠내려
가지 않고 둥둥 떠서 하얀 열 손가락만 떴다 잠겼다 반복하자 시녀와 노비들이 모두
곡하고 사랑하는 임금을 따라 뛰어들었다.
처벌이 두려워 누구하나 단종의 시체를 거두려하지 않았으나 영월사람인 호장
엄홍도가 아들과 함께 시체를 몰래 건져내 동을지산 기슭에 가매장 해놓고 그 위에 돌을
얹어 표시를 해두고 식솔들과 함께 영원히 영월을 떠났다.
세월이 흘러 중종이 즉위하여 단종의 묘를 찾으라는 명에 따라 영월사람들은 엄홍도의
후손들을 수소문하여 찾게 되었고 가매장된 그곳에 묘를 세웠고 숙종 때 노산군을 다시
단종으로 추복하고 이 묘를 장릉이라 명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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