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문기자가 최인호를 역사를 찾는 글쟁이라 애칭한 것을 보고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는 젊은 시절에 대중소설로 많은 인기를 얻은 작가였다. 그는 한 권의 책을 쓰더라도 온 몸의 열정을 쏟아 넣는다. 그가 누구인가! 70년대 초 약관의 나이로 별들의 고향을 써 100만 권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지 않았던가 ! 그 당시 상상을 초월한 일대 사건으로 기억된다. 그러던 그가 언제부터인가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대단한 변신이다.
그의 역사소설을 읽다보면 곳곳에서 그의 열정을 느낄 수가 있는데 도서관이나 역사관에서 고증이나 문헌을 뒤적거리는 작가와는 다르다. 의심이 있거나 애매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간다. 특히 그가 해신을 집필하기 위해 중국을 거쳐 오만까지 가서 오만과 신라와의 교역을 증명하는 자료를 얻어내는 그의 집념은 차라리 역사가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고구려를 바탕으로 한 왕도의 비밀, 백제를 바탕으로 한 잃어버린 제국, 상도 등 대하 역사소설이 가득하다.해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장보고와 신라와의 관계를 부정적인 관계로 설정한다.미천한 신분으로 당나라로 건너가 신라의 위상을 재건 시킨 장보고를 상인 이상으로
종교 개혁자로 부상 시켰고 바다를 지배하는 해상 왕으로 부활시킨 대 로망 소설이다. 의문이 있으며 현장으로 달려가는 그의 열정에 나는 감동받고 그를 좋아한다.
최인호를 알려면 그의 엣세이집 "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싶다" 를 보면 된다. 그는 나와 같은 시기인 1985년에 카톨릭 세례를 받은 걸로 알고 있다. 세례를 받을 때 누가 최인호에게 영세를 받는 소감을 묻자 " 저녁 늦게 까지 밖에서 놀고 있는데 어머니가 인호야 이제 날이 저물었으니 들어와 밥 먹어라 " 라는 표현으로 그의 감정을 대신했다.그렇다면 그는 카톨릭 신자이면서 왜 스님이 되고 싶었을까? 의문이 남는다. 나는 그 해답을 일본 동경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막연히 존경하고 있었던 최인호를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우연히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일본에서 귀국할 때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캐주얼 차림에 운동모자를 푹 눌러 쓴 조그마한 체구에서 강한 카리스마를 느꼈다. 사모님, 아들, 딸 4가족이 일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탑승 대기실에서 만난 것이다.날카로운 눈매와 오똑한 코는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눈 앞에 두고 주위만 맴돌 수만 없었다.
용기를 내서 그에 접근하여 인사를 나누었다.나의 한 마디는 카톨릭 신자이면서 왜 스님이 되고 싶었는가의 질문이었다.최인호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내가 " 길 없는 길 " 집필하면서 경허스님의 발자취를 찾으면서 경허스님의 경외스러움에 반했다. 불교의 심오한 내면에 심취 되었다고 분명히 나에게 말해 주셨다.그 때부터 나는 최인호를 경계하게 되었다. 작품을 위해서는 종교를 바꾸어도 되는가?
나는 최인호를 만난 후 많은 시간 방황을 하였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답을 내렸다.종교를 이중성으로 경계하지 말아야 겠다.
종교는 결국 하나로 종결 된다.최인호가 나에게 준 나의 종교관이 태어난 순간이다.
KY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