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식 에세이

고흥반도 (4)

케이와이지 2018. 1. 30. 15:38

팔영산

 

< 홀로 팔영산을 오르다>

능가사에서 평탄한 보리밭 사잇길을 20여분 걸으면 팔영산장이 상상을 깨고 평지에 다소곳이 앉아있다.
팔영산장을 그냥 지나 10여분 걸으니 들판이 끝나고 마지막 8봉 들머리에 닿았다.

모든 등산객들은 1봉부터 8봉까지의 순서로 하지만 오늘은 약식 산행으로 8봉과

7봉만 답사하기로 작정했던바 7봉 까지만 올랐다.

7봉에 앉아 남해를 바라보며 참외 하나 깎을 때 까지 사람 하나 만날 수 없었다.

1봉까지의 능선은 신비함 그 자체였다. 비로소 혼자임이 아쉽다.


아쉬움을 달래는 방법은 단 한가지 능가사 초입에 봐두었던 둥지식당의 남도 막걸리

한 잔이면 충분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8봉을 다시 넘고 탑재를 지나 팔영산장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둥지식당까지 단숨에 달리니 2시간이 훌쩍 넘었다.

 

문이 활짝 열려있는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김치거리를 다듬다 인기척에 놀란 주인

아낙이 후다닥 일어 나더니 수도꼭지를 틀고 대충 손을 씻더니 앞치마에 손을 쓱쓱

닦으면서 오래 된 의자를 권한다.
막걸리 한 병을 주문하자 잘 익은 갓김치를 덥석덥석 접시에 담아 탁자 위에 놓고 하얀

막걸리병 하나를 아이스박스에서 꺼내 탁자에 내려 놓는다.

그는 막걸리 병을 두어 번 허공에 흔든 후 능숙하게 뚜껑을 따서 누런 알루미늄 잔에

가득 따라 단숨에 마신다.

 

주인아낙은 뭔가 말 한마디라도 있을 법한데 입을 꾹 다문 채 다듬다 만 김치거리

앞에서 다시 쭈구리고 앉아있다.

우직한 아낙과 말 한마디 섞지 않고 막걸리 한 통을 다 비우니 은근히 취기가 온다.
오늘 밤 머물러야 하는 여관이 있는 읍내를 가기 위해서는 이쯤에서
일어나야 겠다.

 

 

 

<고흥에서 낯선 밤을 보내다>


능가사 입구에서  과역까지 다시 이동하여 과역에서 아침의 고흥여고 학생들 처럼

고흥읍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번거로운 순서를 다 마치 고흥읍 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해가 서산에 반뼘 정도 남아 있을 무렵이었다. 여관에 들기 아직 일러 서울의 남산

같은 봉황산에  올라 읍내를 조망해 본다.


낮 동안 이글거리던 태양은 어느덧 운강산 허리에 넘어가고 순수의 땅은 점점
어둠을

찾아가고 그 자리를 하나 둘씩 붉은 네온이 메우기 시작한다.

서둘러 내려가 고흥이 자랑하는 토속음식도 먹어야 하고 안락한 잠자리도 찾아야 한다.

 

이튿날
간밤에 부탁했던 모닝콜이 좁은 공간을 뒤흔들자 마치 반 자동 머신처럼 잠자리에서

튕겨나와 버스터미널로 내달려 천등산 행 첫차를 가까스로 잡았다.

06시 40분 출발이다.

 

 

천등산 금탑사

 

<천등산 금탑사의 여승>


금탑사 입구에 가게나 식당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아침을 거르고 50분을
달려

왔건만 아직 이른 아침인지 문을 연 가게가 없었다.

마침 금탑산장으로 쓰여진 화살표가 있어 희망을 걸고 단숨에 오르막길을 올랐지만

이곳 역시 문이 굳게 닫혀 있다. 탱탱 굶고 산행할 걸 생각하니 준비의식이 없는 내

자신에 몹시 화가 났다.


팔영산, 적대봉에 이어 고흥 3번째로 높은 천등산(555m)은 옛날에는
이 산에 수많은

사찰이 있어 승려들이 천개의 등을 만들어 하늘에 받쳤다해서 천등산이라 불렀다한다.

천등산 자락에 살포시 자리 잡은 금탑사는 마당도 작고 본채도 작았지만 진사리를

모신 3층  석탑만큼은 여느 사찰 못지 않는 품위를 가지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인기척도 없고 등산길을 안내하는 리본 하나 보이지 않아 본채에 대고

누구없냐고 몇 번을 소리치자 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스님 한 분이 고개를 내밀고 응대하는

목소리는 분명 여자 목소리였다. 아! 금탑사가 비구니 사찰이었구나.
친절한 여승에게 희미한 등산로를 안내 받고 수통에 물 가득 채우고
떡 두 조각 받아

배낭에 챙기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천등산을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 등산로가 희미할 것이라며 조심해서 다녀
오라는 여승의

환한 얼굴과 누나의 얼굴이 겹치는 행복은 잠시뿐 웃자란 나뭇가지의 방해, 거미줄과의

처절한 싸움, 몇 번의 알바 끝에 정상이 보였다.

악전 고투 1시간 반만에 돌탑이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는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고통의 보답으로 남해의 아름다운 경관을 선사 받을 수 있었다.


별학산 하산 길도 만만치 않아 웃자란 억새 숲을 통과 할 때는 얼굴과 팔뚝이
따가울 정도

아팠지만 누구에게 하소연을 할 수가 없다. 그가 선택한 본인만의 고집이기 때문이다. 
산간 마을을 지나고 제법 큰 마을을 지나자 자그마한 저수지가 있다.
저수지에 얼굴을 씻으려 얼굴을 들이대자 누나의 얼굴이 물에 떠있다.
“ 용재 동생, 수고했네, 힘들었지? “
문득 내 자신이 길고 힘든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수도자 같다는 생각이 들자
왈칵 눈물이 났다.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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