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는 강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다가 죽을 때가 되면 자기가 태어난 강으로 되돌아오는데 그것을 연어의 母川回歸라 한다. 되돌아 오는 길이 자신의 몸을 반 밖에 덮지 못하는 얕은 물길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이 있어도 거슬러 오르고 수 미터의 폭포가 앞을 가로 막아도 목숨을 걸고 뛰어 오른다.
연어는 왜 이렇게 고통의 여정을 감내하면서 까지 귀소 하는가 이유는 단 한가지다.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새끼를 낳고 그 곳에서 생을 마감하기 위해서다.
학창시절에 여름방학이 되면 고향을 찾는 게 나의 유일한 기쁨이었다.. 무더운 여름밤 저녁상을 치우면 아버지는 마당 한구석에 피워 놓은 모깃불에 쌩 풀 한 줌 얹어 놓고 방으로 들어가시면 어머니와 나는 평상에 앉아 매캐한 연기를 온 몸으로 맡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다 문득 잠이 들다 눈을 떠보면 어머니는 그 모습 그대로 삼베 길쌈을 하고 계신다.
굵은 삼껍질에 손가락을 끼어 넣어 가늘게 가르는 일인데 한 묶음을 끝내려면 하염없는 시간이 흘러야 한다.
혼자 저토록 한결같은 같은 자세로 긴 시간을 무슨 생각을 하시면서 길쌈을 하고 계셨을까!
시골 꽃가마를 타고 시집 온 어머니는 7남매를 낳아 이곳에서 기르시고 팔십이 넘어서야 자식들 사는 서울에서 세상을 떠나셨는데 어머니 곁을 떠난 연어 새끼는 황막한 대도시 회색 물결 속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떠밀려 다녔지만 어머니 생전의 말씀을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
권모술수를 모르는 사람이 존경 받지만 권무술수를 알고도 쓰지 않는 사람이 더 존경 받는다고 살아 생전에 늘 말씀하신 어머니이시다. 지금 생각하면 농사를 일삼고 있는 시골 아낙으로서 수준 높은 인생관이 아니었나 생각하였다. 어머니의 연어 새끼는 어느덧 또 다른 어미가 되어 어머니의 강을 그리워하고 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으로 인해 개발은 또 다른 개발을 부르고 도시는 또 다른 도시를 낳더니 부동산 광풍은 이제 증시로 풍향을 튼 것 같다. 내겐 먼 나라 이야기 일 뿐이다. 비가 주적주적 내리니 한 잔 생각 날만도 한데 친구가 불러도 못들은 척 하고 노원역 앞 먹자 골목이 유혹의 손짓을 해도 흔들리지 않고 집에 들어 왔는데 아내가 없다.
불려 놓은 재산이 없다며 늘 불안해하는 아내! 남편에게는 희망을 버렸는지 언제부턴가 아들이 자취하고 있는 수원 나들이가 부쩍 늘었다.
냉장고 속에서 말린 오징어채 한 줌 꺼내 놓고 무슨 술을 꺼낼까? 식탁에 일본주 한 잔 내리치는 탁음이 통쾌하다. 제법 얼큰하여 아내에게 전화하니 아직 수원이란다. 이리저리 TV 채널만 돌리다 용철이 집이라도 갈까 주섬주섬 바지를 입다말고 다시 벗는다.
야! 김용재 너, 약해 졌구나! 세월의 나약함에 길들여 있구나! 고교동창인 용철이는 노원역 앞에서 생맥주집을 하고 있는
가슴이 따뜻한 친구이다.
이리저리 고향의 들판을 달려 보기도하고 이가 시리도록 얼음 조각을 깨물어 먹다가 문득 눈을 뜨니 방에 불이 켜져 있고 내 자그마한 몸 위에는 12년 전의 삼베이불이 덥혀 있다.
삼베이불은 어머니 생전에 당신이 직접 만들어서 당신의 셋째 며느리에게 주신 것이지요? 싱크대에서 딸그락 거리며 설거지 하는 아내는 올 여름 들어 처음으로 삼베이불을 장롱에서 꺼내 움츠리고 자고 있는 나를 덮어 준 것이다.
창밖은 어둠이 깔린 지 오래되었건만 아직도 장맛비가 주적주적 내리고 있다. 딸그락 거리는 설거지 소리는 멈춘 듯 이어지며 꿈결같이 들려온다.
kyj
'비공식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련 청계천 (1) (0) | 2018.07.02 |
---|---|
12년 전의 여름휴가 (0) | 2018.06.25 |
수종사 삼정헌에서! (0) | 2018.05.14 |
황진이가 그리운 계절 (0) | 2018.05.09 |
영월에 서서 4 [ 장릉 편 ] (0) | 2018.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