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그는 따뜻한 남쪽지방 보성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를 보성에서 보내고 광주에서 3년간 중학교 학창시절을 보냈다. 이 글은 중학교 시절 계림동 모 하숙집에서 함께 하숙하였던 고흥이 고향인 누나를 회상하면서 고흥을 두루 다녔던 기행문 형식으로 작성한 것이다.
그가 광주북중 2학년 때 그 누나는 광주여상 2학년이니 나이차이는 3살이며 이름은 박선자, 고향은 고흥군 과역면 이라는 것 밖에 기억이 없다. 누나도 그이 처럼 고흥에서 광주까지 유학 온 것을 보니 부유한 집안이란 것을 어린나이에도 짐작할 수 있었다.
얼굴형은 계란형이지만 턱이 약간 좁았던 이지적인 모습의 누나 얼굴이 헤어진지 35년이 흐른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것은 그만큼 누나의 아련한 그리움이 남아있다는 증거이다. 그가 누나를 따르듯이 누나도 다정하게 그를 대해 주었기에 누나 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차 늘어났고 그만큼 다른 하숙생들에게 받은 시샘도 심했다.
어느 눈 내리는 겨울저녁 누나는 신밧드로 기억되는 영화를 보러 가자며 그이 방에 건너 와서 옷을 챙겨 입히고 하얀 마스크를 씌워주는 것도 잊지 않은 자상한 누나였다. 하숙집에서 걸어가면 40여 분 거리인 남도극장 가는 길은 광주천을 낀 도로인데 한 겨울이면 맞바람이 한가닥 하는 곳이다.
그날 밤도 겨울바람은 꽁꽁 얼어 붙은 광주천을 넘어 사정없이 얼굴을 때리자 누나는 춥지 춥지 하면서 자라목이 된 그이 얼굴을 구로곤색 코트 속으로 끌어 들이면서 어깨를 꼬옥 껴안아 준다. 후끈한 누나의 코트속에서 숨이 막힐 것같은 행복감을 느끼면서 종종 걸음으로 누나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며 걸었다. 코트 속에서 향긋한 누나의 체취를 느끼면서 밤새도록 이 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보같은 생각을 하며 누나와 함께 걸었던 추운 겨울 밤의 남도극장 가는 길은 성인이 된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와 누나는 졸업시즌이 되자 예고없이 얼떨결에 서로의 길로 갈라섰다. 그는 서울 유학을 준비했고 누나는 취직과 대학진학이라는 갈림길에서 잠시 고흥 집에 가 있던 사이에 그는 진학 스케쥴에 맞춰 급히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고 그날 이후로는 누나와는 만날 수가 없었다. 인사도 못건네고 떠나온 아쉬움은 서울 선린상고 시절에 묻혀 그의 머리 속에서 누나는 영원히 잊혀진 듯 하였다.
그러던 어느해 대한산악연맹 회보에 실릴 원고를 모집한다는 운암산악회 후배의 연락이 왔고 주제는 한국 산하에 관한 것이라면 주제 불문이라는 첨언도 있어 문득 한국 100대 명산인 고흥 팔영산을 생각해 냈고 오랫동안 묻어 두었던 누나의 추억을
세상 밖으로 꺼냈다. 그 날 이후부터 그의 머리속은 온통 누나와의 추억뿐이었다.
지금쯤 중년이 되어 어느 한 가정을 이루고 있을 그 시절 누나의 그리운 얼굴은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도 바쁘게 걷는 거리에서도 아른거린다.
떠나자!
고흥에 가서 누나를 찾아보자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100대 명산 팔영산 산행을 간다는 핑게를 대자.
2편으로 계속